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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의 생각모음

말의 권세

by 데이빗_ 2016.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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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권세

나는 어려서부터 긍정적인 언어 습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좀 똑똑하다는 소릴 듣는답시고 늘 다른 사람 의견에 꼬투리만 잡는, 소위 밥맛 없는(?) 학생이었다. 내가 들어 온 설교는 늘 교계의 현실과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내용이었고, 부모님과 함께 영화나 TV프로그램을 볼 때면 늘 “옷차림이 저게 뭐냐 쯧쯧쯧” 하는 말씀을 들었다. 나는 소위 “모범적인 크리스찬”의 표본이었기 때문에, 최소한 겉모습에 있어서는 늘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판할 자격이 충분했(다고 생각했)다. 교회에서는 잘 나가는 크리스찬이고 모범적인 리더였지만, 말의 권세에 대해 깨닫기 전까지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 자세가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 사업으로 인해 대구로 이사를 갔다. 그 곳에서 정착한 한 교회에서, 목사님께서는 한 동안 “말의 권세”에 대해 설교를 하셨다. 우리의 말에 얼마나 많은 권세가 있는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가 얼마나 우리의 영을 황폐하게 하는지 “침을 튀기시면서” 강력하게 설교하셨는데, 나는 그 때까지 말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히 설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목사님께서는 한 가지 주제에 ‘꽂히시면’ 같은 주제로 2주 3주 내내 설교하시는 스타일이셨기 때문에, 처음에 와 닿지 않던 설교 내용은 반복되면서 조금씩 내 머리를, 그리고 영을 깨우기 시작했다.

말에 권세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의식적으로 내가 쓰는 말을 모니터링 해 보기 시작했다. 나는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행동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언어 습관은 전혀 크리스찬답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습관적으로 “시험 망치면 어떡하지”를 입에 달고 다니고, 습관적으로 “아 몰라 망했다”를 되뇌이고 다녔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포털 사이트 뉴스를 볼 때마다 “죽일놈”을 달고 다녔다는 것이 그제서야 의식에 포착되었다. 이래서는 취업도 안 될 거야,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야, 죽겠네 등등.

말을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의식적 노력이 수반되어야 했다. 말은 의식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에서 저절로 물이 배어 나오듯, 그냥 가만히 두어도 부정적인 말들은 그냥 흘러 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늘 우거지상을 쓰고 다니는 우울한 학생도 아니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친구들과 함께 웃고 다니고, 그냥 철딱서니 없는 스무살 남학생들이 쓰듯 부드러운(?) 수준의 욕설을 섞어 쓰는 그냥 평범하고 어찌 보면 밝은 대학 신입생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부정적인 기운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자세히 모니터링해 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말이 흘러 나오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나았다. 한 마디를 할 때도 이것이 긍정적인 말인지를 의식하며 말하자니,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수 주, 수 개월에 걸쳐서 언어 습관을 조금씩 고쳐 나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말의 권세를 가진 사람에 걸맞는 생활 양식이 체화되기 시작했다. 비전에 맞는 언어 습관이 혀에 붙기 시작했다. “잘 안 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의 말은 “잘 될 거야”라는 긍정의 말로 대체되었다. “~~해 죽겠네”라는 일상언어는 “~~하다”로 대체되었다. 짜증나, 열받네 등의 부정적 감정표현이 떠올라도, 입 밖으로 내지 않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낭패를 보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오던 “망했다”라는 감탄사는 아주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내 삶은 조금씩 Turn Around하기 시작했다. 말이 바뀌니 감정과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긍정적인 꿈을 품게 되었고, 비전에 어울리는 생활양식을 가지게 되었다. 학교 공부는 점점 재미있어졌다. 학업 성적은 흥미에 맞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안 될 것만 같던 일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냥 동경의 대상일 뿐이었던 대학원도, ‘한 번 해 볼만한 것’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말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나도 내 주위의 상황을 말로써 창조하고 있었다. 나는 주위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했다.

입시 준비는 만만하지 않은 일이었다. 서류 평가, 영어 성적, 전공 구술 면접까지, 어느 하나라도 미끄러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학교 성적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영어는 태생적으로 취약한 과목이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을 수도 있었다. 전공 구술 면접은 어떤 이유로든 트집을 잡힐 수 있기 때문에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관문이었다. 시험 준비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정도면 됐어”가 없다는 것을. 다소 지나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이 모든 난관들을 말로써 극복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 맡긴다”고 선언했다. 입시 준비 기간 동안, 나는 시시 때때로 말로써 내 심령을 깨웠다. 마치 다윗이 자기의 영혼을 다른 사람처럼 지칭하며 대화했듯, 나 또한 그랬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느냐”라고. 어느 정도 훈련이 되니 말 한 마디로도 낙심 모드에서 담대 모드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것은 독서나 영어공부, 아침형 생활패턴 연습보다도 더 중요하고, 더 강력한 자기관리이자 자기계발 방식이었다.

말은 1차적으로 내 심령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는 나의 군사가 되어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어느 날 입시에 제출하기 위해 TOEFL 시험을 보러 갔는데, 그렇게 자신 없었던 영어 듣기가 또렷하게 들리는 것을 체험했다. 마치 어디서 들었던 것처럼. 그 시험에서 영어 성적은 그야말로 “치솟았고”, 나는 더 이상 영어성적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점수를 획득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학사제도 변경으로 4.3만점의 학점체계가 4.5만점으로 조정되면서, 내 학과성적 평점 평균은 대략 0.15~0.2 정도 상승했다. 4학년 1학기 때 내 타겟 리스트에 있던 광주과학기술원에서 인턴연구원 생활을 할 기회도 얻게 되었다. 인턴연구원 경력은 가점이 되어 어렵지 않게 광주과기원 입시를 통과하게 되었고, 이어 치러진 KAIST 입시도 무사히 통과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대학원 준비 과정 내내 나에게는 갖가지 호재가 따랐다. “운이 좋았다”는 한 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치밀하고도 계획적인 섭리였다. 사람이 힘을 다해 준비해도 극복하지 못하는 2%가 있는 법이다. 나는 올바른 언어 습관을 선택했고, 하나님께서는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의 용병이 되게 하셨다. 민수기 14장에 기록된 말씀,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를 직접 체험하게 해 주셨다.

최근에 어떤 목사님께서 나에게 그러셨다. “엄청나게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네요”라고. 나는 “하나님께서 노력한 것 이상을 주셨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겸손 떠느라 하는 말이 아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내 노력만큼만 이루게 하셨더라면, 나는 내가 가진 것 중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내 노력만큼이었다면 과기원 입시는 생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의지력만이었다면 힘든 학위 과정을 버틸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내 능력으로는 대기업 입사도 어려웠을 것이다. 내 계획대로만 이루어졌다면 학생 신분으로 부모님께 단돈 천원짜리 한 장 받지 않고 결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단칸 자취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형편에서는, 회사 입사 전에 25평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분은 언제나 최상의 것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자녀된 나에게 전수해 주신 말의 권세가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가 있으셨듯, 그리스도인의 말도 권세가 있음을 나는 믿는다. 언어 습관을 고치느라 부단히 노력하던 시절에,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내가 내뱉는 말들이 모두 다 즉각즉각 실행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나는 말로써 부정적인 씨앗을 심는 사람이었다. 말의 권세를 깨닫고 나서부터, 나는 긍정적인 미래의 씨앗을 심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평생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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