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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의 독서노트

독서후기 : 목로주점

by 데이빗_ 2016.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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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180권 전자책을 249,000 원에 판매하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무릇 전집이라 함은 종이책으로 사서 잘 보이는 곳에 꽂아 두어야 인테리어 소품으로 제맛이지만, 그건 위시 리스트에 담아두기로 하고 일단 전자책을 구매해 보았다.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 개인적으로 안나 카레니나와 더버빌 가의 테스, 그리고 데미안 등, 문학동네 번역보다 훨씬 더 잘 읽힌다. (목로주점을 다 읽고 나서 로빈슨 크루소를 비롯한 다른 작품도 읽고 있는데, 문학동네보다 더 잘 읽히는 것 같다)

주인공 제르베즈라는 여자가 주변 인물들과 얽히면서 성공하고, 또 몰락해 가는 내용이다. 철없던 시절 랑티에라는 양아치와 얽혀서 아이를 낳았는데 애아빠가 도망간다. 다시 쿠포라는 성실한 함석장이와 결혼해서, 성실하게 돈을 모은다. 그리고 성공한 세탁소 사장이 된다. 근데 남편이 일하다 다치고 나서 술에 손을 대고, 철저히 술꾼이 되어 가면서 가산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그 와중에 도망간 교활한 옛 남편 랑티에가 겉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으로 돌아오고, 제르베즈를 유혹한다. 제르베즈의 의지력도 조금씩 무너져, 결국 두 남편과 살고, 식도락에 빠져 매일 먹방을 찍어대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몰락해 가는 과정. 그리고 결국 주인공 여자도 술에 손을 대고, 돈이 없어 밥을 구걸하고, 집에서 쫓겨나고, 계단 밑 개집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는 내용.

사람이 이렇게 철저하게 몰락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있자면, 그다지 크게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주인공이 조금이라도 의지력을 발휘했다면 저렇게까지 몰락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 하기야, 성실하게 살려고 애를 쓰고 발버둥을 쳐도, 양아치 같은 놈들이 주위에 들끓고 발목을 잡아 대니 어디 될 일인가. 그랬어도, 항상 주인공이 더 나쁜 나락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충분히 나쁜 상황이지만, 그래도 본인의 의지가 작동했따면 더 나쁜 단계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다음 단계로 전락하고 나면, 그래도 이전 단계까 조금이나마 더 나았던 거 아닌가.

재산이 줄어들고 있을 때 식도락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현상유지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식도락에 빠졌을 때 그래도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세탁소를 빼앗기지 않았을 텐데. 세탁소를 빼앗겼어도, 날품팔이라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면, 푼돈을 구걸하러 시누이네 집에 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자기가 주인이었던 그 세탁소에 가서 바닥을 닦는 일을 하는 처지에서라도,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술독에 빠져 음식물쓰레기를 먹는 일은 없었을 텐데.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최소한의 의식이 깨어 있지 못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의식을 높이는 일이란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의식이 높다고 해서 부자가 되고 떵떵거리며 살 만큼 명예가 높아질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상황에서도 의지를 놓지 않을 수 있게 해 주는 하나의 힘은 될 수 있었으리라.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적절한 때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이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정신 차리자. 회사에서도,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처럼 철저히 무너지지 않더라도, "나쁘다"고 정의한 상황으로 떨어질 가능성이란 있는 것이다. 늘 상황을 주시하고 대책을 세우자.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지금 나쁜 상황이라면) 이 상황을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자포자기해버리면 안 되는 일이다.

지금도 Garbage 같은 남자들이 많은데, 이 소설이 쓰여지던 시절에 쿠포와 랑티에 같은 양아치가 등장하는 것을 보니 그 시절에도 쓰레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딜 가나. 랑티에 이 놈은 교활하기 짝이 없는 인간 쓰레기인데, 아마 작가의 상상 속에나 존재하지 실생활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대체 어떤 뇌 구조를 가졌길래 이렇게 철저하게 사람을 몰락시키면서 밟아댈 수 있을까? 이 놈은 의식 수준이 어떨까?

배려심, 사랑, 부성애, 모성애 등과 같이 우리가 "인지상정"이라고 부르는 자질들은, 사실은 인지상정이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사회화와 학습에 의해 후천적으로 장착되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그게 아니라면 아내가 배를 쫄쫄 굶고 기다시피 해서 해서 남편의 직장에 왔는데 그걸 팽개치고 술을 먹으러 갈 수가 있을까? 아니면 쿠포라는 놈이 철저하게 양심에 화인을 맞은 놈이었거나.

밑바닥 인생을 사는 나쁜 놈들 사이에 낀 불쌍한 여자의 이야기. 소설은 철저하게 지어진 것이지만, 그 안에는 작가의 철학이 녹아 있다. 그리고 배울 점이 참 많다는 점에서, 세계문학전집 읽기는 훌륭한 인문학 공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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