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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의 독서노트

독서후기 (2017-29) : 더 내려놓음

by 데이빗_ 2017.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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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었던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님의 후속작이다. 이 책이 출간된 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고 저자 역시 이제 연세가 더 드셨겠지만, 책을 통해 전해지는 영성과 도전은 여전히 생생한 느낌이다.

저자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내려놓음이라는 말이 세상의 부와 지위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전 북리뷰에서 쓴 것처럼, ‘내려놓음은 어떤 거대한 이정표적 행위라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순간순간 하나님께 여쭙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 드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자기를 내어 맡기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책은, 누가복음 1511-32절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삶 속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럼으로 어떤 평안을 누리게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자기애 내려놓기’, ‘자기의 내려놓기’, ‘더 더 내려놓기가 그것이다.

1부에서는 자기애를 다루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의식하는 것, 이것만은 안 된다고 끝까지 고집하는 자기 의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내 계획을 하나님의 인도하심보다 더 신뢰하는 것, 하나님 앞에서 이것만은 안 된다고 끝까지 움켜쥐고 있는 것, ‘하나님 다 포기해도 이 목표만큼은 포기할수 없어요라고 외치는 것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들었다. 그것을 내려놓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하기 때문에라기보다도,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고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측 가능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예측 가능한 일들만 추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우리의 기회를 드리기보다는 우리의 계획과 경험과 고집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간다. 하나님이 들어오실 자리를 만들어 드리지 않은 채결국 자신이 신뢰하는 것에 자신이 묶인 채 살아가는 것이다.

이 챕터에서는 더불어 관계로 인한 상처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관계로 인한 상처는 자기연민과 자기애를 먹고 산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자기를 스스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상처를 더욱 키우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자신에 대한 집착과 자기연민의 감정을 해결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상처가 불편하고 아프니까 마음에 불평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가 주는 자기연민을 즐기게 된다. 제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상처는 중독성이 있다. 특히 마음의 병인 경우 우리는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라기보다 상처를 되씹는 경우가 많다. 지금 상황에 안주한 채 변화하지 않으려고 한다. 치유와 회복의 기회가 찾아오더라도 그것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평안을 얻고자 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세운 스케줄, 내가 세운 계획, 내가 추구하는 가치 등이 하나님보다 우선할 수 없음을 다시 깨닫게 된다. 지나치게 나를 사랑하는 것은 자칫 자기숭배의 우상에 빠질 수 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도, 어쩌면 자기애롭터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자기애 내려놓기 자체도 자기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려놓는 문제 자체도 무엇을 하려 해서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맡겨 드리라고 저자는 권하고 있다.

우리 안에 혹시 하나님조차 들어갈 수 없는 영역이 있는가? 이 영역 안으로 주님을 초청하라. 주님이 내 의식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셔서 나의 주관자가 되어주셔야 한다.

두 번째 챕터에서는 자기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마음, 그것은 큰아들의 마음이다. 내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부당하다 여기는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자기만의 기준을 정해 놓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한다. 이것은 완악한 마음이다. 이 마음을 하나님 앞에 맡겨 드려야 한다.

우리가 믿음의 공동체 내에서 분노하는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이 숨기고 싶어한 자신의 모습이 드러날 때이다. (중략) 사실 숨기고 싶은 모습이 자신의 진짜 모습이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도 그 은혜가 표면에 그치고 그 사람의 내면 깊은 곳까지 미치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하더라도, 여전히 짓눌려 있는 내부의 어린아이가 크게 소리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분노의 마음이 불신앙의 증거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기의 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분노하는 자체가, 자아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꼿꼿하게 세우는 것임을 이해해야겠다. 앤서니 라빈스는 분노의 감정을 규칙을 어겼을 때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기가 세운 자기만의 규칙을 누군가 어겼을 때 그에 대해 분노한다는 것이다. 그 규칙이란 게 바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자기의가 아닌가 싶다.

자기의에 사로잡히게 되면, 자기 기준에 따라 스스로를 평가하게 된다. 어떤 성과를 이루었는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얼마나 땀흘렸는지를 가지고 스스로를 평가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고 한다.

나는 네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보고 평가하지 않는다. 네가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내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하는 것이 내가 너를 보는 기준이다.

경쟁심의 문제 역시 다루어져야 할 대상이다. 자신을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누구나 범하기 쉬운 오류일 것이다. 가치 기준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 있지 못하면, 항상 이런 경쟁심 문제에서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상기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자아가 굴복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이 역시 자기 의를 내려놓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판단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판단하는 사람의 영혼을 보호하시기 위함이라는 저자의 설명이 와 닿았다.

우리는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내 의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판단과 달리 분별이란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중략)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다. 영어성경에서는 이 지혜를 분별하는 마음이라고 번역했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의 심정을 읽고 마음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맡은 일의 중요성이나 성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신다. 이 점을 직장생활 하면서 늘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겠다. 직장은 끊임없이 경쟁하고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본향이 아님을 늘 새기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로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건강하고 친밀한지를 보신다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마지막 3부에서는, 인생 계획의 모든 결정을 내려놓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내 인생은 회사나 상사나 고과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온전히 밑고 하나님의 스케줄에 온전히 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 절반 정도만 그렇게 생각하고 온전히 몸을 맡기지 않으면, 여전히 미래는 세상 권세에 달린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다이나믹한 계획을 기대하고 누려야겠다.

지나치게 성공을 추구하는 마음에 대해 저자는 이와 같이 경고한다.

우리의 관심은 늘 성공에 맞춰져 있다. 우리의 관심이 성공에 맞춰져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가 없다. 심지어 그 성공이 하나님의 사역의 일환으로서 성공일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붙잡으려고 하는 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도구로 쓰임받지 못한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의 거룩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마음을 미혹하는 출세, 재물, 비교, 경쟁 등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오직 내 공급자이시고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온전히 두어야 함을 느낀다. 저자가 말한 대로 자기 사랑, 자기 의로움, 경쟁심, 성과에 대한 집착 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어릴 때부터 늘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설교처럼, 이 세상이 우리의 본향이 아님을 늘 깨닫고 명심하며 살아야겠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평안을 추구하지 말고, 내 안 깊은 곳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평안을 누리는 삶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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