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데이빗의 생각모음

사내 익명 게시판을 통한 소통

by 데이빗_ 2020. 12. 15.
반응형

최근 우리 부서 내에 익명으로 소통할 수 있는 단체 채팅방이 하나 열렸다. 일종의 업무 소통창 같은 역할인데, 본명이 공개되지 않아서, 좀더 마음속에 있는 자유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자유로운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거운 이야기가 오가기도 한다. 특히 해당 채팅방에는 임원이 입장해 있지 않아서, 상사를 향한 불만사항 또는 요청사항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익명 게시판이라는 장점이, 때에 따라서는 도를 넘어선 표현으로 감정상하게 하는 일도 있지만, 익명게시판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을 이야기 -하지만 조직에 꼭 필요한 쓴소리들- 들이 이따금 올라와서 공감을 얻기도 한다. 스탭 조직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모아서 임원 분께 전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올라가지 않더라도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어?" 하는 생각에 마음이 좀 풀리기도 한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글을 쓰는게 핵심이지만, 가끔 사람마다 말투나 자주 쓰는 버릇 (일본어로 '쿠세'라고 한다는데) 이 때문에 신원이 노출될 수가 있어서, 3~4일에 한 번씩 닉네임을 바꿀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점도 좋은 것 같다. 전사적으로 운영되는 익명 소통 창도 있다. 회사 직원들이 2만 명이 넘으니 거기는 좀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것 같다. 사내 주요 정책이나 직원복지, 임금협상 등에 대한 불만글, 성토글 등이 올라오기도 하고, 훈훈한 미담 같은게 올라오기도 한다. 점심시간 처럼 짬이 날 때, 가끔 들어가 보면 꽤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익명게시판에서 특히 주목이 가는 글은, 추천수가 압도적으로 높거나, 비추천수가 압도적으로 높은 경우이다. 추천 수가 압도적으로 높은 글은 몇몇 케이스가 있는데, 대개는 조직 내에 불합리한 상사나 시스템, 제도 등에 대한 성토, 또는 개선을 요구하는 글들이다. 읽다 보면, 정말 세상에 이런 조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별의 별 케이스가 존재한다. 여직원의 엉덩이를 만지고도 별다른 죄책감을 가지지 못한다든지, 후배 사원에게 "야"라고 부른다든지, 휴가 신청을 했는데 왜 쓰느냐고 꼬치꼬치 캐묻는다든지. 최근에 올라온 글 중에서는 압도적인 추천을 받은 글은... 회식 문화좀 개선하자는 것.

내용인즉슨 이랬다. 일찍 들어가려 했더니 상사들이 "나 때는 말이야 3차까지 다 따라갔어" 하면서 자꾸 끌고 간다는 거다. 아직도 이런 조직이 있나 싶을 정도로 희한한 케이스였다. 댓글도 많이 달렸다. "우리 팀도 송년회식 하는데 좀 안했으면 좋겠어요." 라든지, "코로나인데 왜 우리 팀장님은 꼭 회식을 하려고 하나요." 등등... 몇몇 꼰대(?)력 강한 선배사원들 때문에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는 모양이다. 그 와중에 압도적으로 높은 비추천수를 가진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회식도 업무의 일환입니다. 누구는 일찍 가고 싶지 않나요? 나 하나 편하자고 개인행동을 하면 팀웍이 깨집니다. 그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구마를 열개쯤 쑤셔넣은 느낌이었다. 이야, 이런 사람이 정말로 있는 것일까? 아니면 관심을 끌고 싶어서 쓴 것일까? "그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는 대체 뭐임?? 주작 같은 느낌도 들고. 거기에는 댓댓글이 엄청나게 많이 달렸다. 익명 게시판의 역기능이라고나 할까? 주작이든 관심을 끌려고 한 글이든 어쨌든 제3자 입장에서는 재미있다. 

내일은 또 어떤 글이 올라올지 기대가 된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