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무럭무럭 성장중

꿈꾸는 어른이

생각모음/직딩일기

한메타자교사의 추억 - 시대에 맞는 조기교육(?)

자기계발팩토리 2020. 12. 25. 09:56
728x90

바로 직전 포스팅에서 어릴적 배우던 컴퓨터 이야기를 했다. 어릴적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추억에 잠겼다. 추억놀이 한다는 자체가 대략 아재 인증이지만, DOS 운영체제에서 돌아가던 한메타자교사 프로그램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아저씨임을 인증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아버지는 본인의 공부뿐 아니라, 자식 교육에도 관심이 많으셨다. 1994년 당시 386 / 486 컴퓨터를 한 대씩 샀던걸 생각하면, 뭔가 큰 결심이 있었던 것 같다.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화폐가치 환산에 따르면, 당시 100만원은 요즘돈으로 하면 200만원 가까운 가치였다고 한다. 얼마 주고 사셨는지는 모르지만, 옛날 컴퓨터 잡지 등을 써치한 결과 486 컴퓨터 가격이 대략 130 만원 정도 했다고 하니, 두 대를 샀으면 못해도 당시 돈으로 200~220 만원, 요즘 가치로 따지면 500만원에 가까운 투자였을 것이다. 앞으로는 누구나 컴퓨터를 해야 하는 세상이 올 거라는걸 미리 아셨던 것일까.


당시 아버지는 나와 동생의 타자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고심하셨던 것 같다. 비슷한 나이또래면 아마 기억하는 분들도 많을 텐데, 앞 글에서도 한번 언급했던 "한메타자교사"라는 프로그램은 당시 아주 유명했다. 요즘은 타자 칠 줄 모르는 사람이 드물지만, 당시에는 개인용컴퓨터가 많이 보급되기 전이어서 독수리 타이핑 하는 사람들도 꽤 되었다. 아버지는 컴퓨터 자판을 보면서 글자입력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그리고 장문타자 기준으로 기록갱신을 할 때마다 외식을 하기로 룰을 정했다. 동생이 좋아하던 곱창. 자연스럽게, 학교 끝나고 타자연습 하던게 일상이었다. 그 리워드가 없었다면 아마 게임에 더 몰두하지 않았을까?

 

한메타자교사

 


동생은 장문타자 기준으로 분당 600타 정도, 나는 조금 못해서 분당 500타 정도 쳤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주1회 컴퓨터 수업시간이 있었다. 타자대회를 했는데 내가 500타 정도로 1등이었다. 2등은 분당 250타였는데, 그 친구도 또래에 비하면 굉장히 잘 치는 편이었다. 보통은 컴퓨터를 학교에서만 만져볼 수 있는 환경이었으니, 분당 150타 정도 넘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는 엄청난 행운을 누린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생각으로 타이핑 연습을 시키신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앞으로는 컴퓨터가 대세일 텐데, 자판입력이 불편하면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생각하셨을 것 같다. 어쩌면, 뭔가 시켜야 하는데 게임 말고는 할 게 없어서 타자연습을 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덕분에 나는 컴퓨터를 다루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타자가 어느정도 익숙해지자, 아버지는 내가 프로그래밍을 배우도록 유도하셨다. 당시 컴퓨터 학원에서 소위 중급반 이상 되면 BASIC 을 가르쳐 줬다. 나는 학원에서 배운 적은 없었지만, "프로그래밍을 배우면 게임을 만들 수 있다"라는 아버지의 꾐(?)에 빠져서, 시중에 나와 있는 쉬운 책을 가지고 코딩을 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래밍은 매력이 있었다. 도스에서는 명령어를 한 줄 칠 때마다 바로바로 결과가 나왔는데, 프로그래밍은 여러 줄을 모아서 순차적으로 처리하니 뭔가 "고차원적인" 작업을 하는 느낌이었다.

 

MSDOS QBasic

 



그렇게 계산기 프로그램도 짜고, 구구단 프로그램도 짜고... 조금 더 욕심을 내서 비주얼베이직도 배우고, C언어도 배웠다. 그게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들어갈 무렵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 때는 꿈이 프로그래머였다. 중학교 2학년 때, 되고 싶은 직업을 정해서, 그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분을 찾아서 인터뷰하는 숙제가 있었는데, 당시 PC 통신 프로그램 "새롬데이터맨"으로 유명했던 "새롬정보기술"을 찾아서 거기 프로그래머 분을 찾아서 인터뷰를 한 적도 있었다. 



전산과 대신 전자과에 진학하게 되면서, 반도체 엔지니어가 되었다.  프로그래머가 되겠다는 꿈은 수정되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어릴 때부터 꾸준히 배워왔던 프로그래밍 경험은, 업무를 훨씬 효율적으로 하게 도와 주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고차원적인 것은 아니고, 엑셀 매크로, 또는 파이썬을 통한 간단한 업무자동화 정도이다. 그래도 1시간 걸릴 일을 1분만에 해 주는 장점이 있다. 한 달이면 20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인력으로 했더라면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실수나 정보 누락도 막아준다.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는 능력은, 단지 업무를 좀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하는 기술사무직 엔지니어들에게, 그것은 "원하면 언제든 원하는 툴을 만들어 쓸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공대 학부 시절, 학기마다 3학점씩 프로그래밍 과목이 있었다. 코딩하는 과정에서 꽤 어려움을 겪던 친구들도 있었다. 공대생이라고 다 프로그래밍을 잘 하는 건 아니니.... 그런 점에서, 어릴 때부터 취미삼아 프로그램을 짜던 습관을 가져왔던 건 어쩌면 행운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시작은 거금(?)을 할부로 투자했던 아버지의 선견지명(?), 그리고 "한메타자교사"를 활용한 조기교육이 제대로 한몫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시대는 계속 바뀐다. 우리 부모님은 컴퓨터가 대세가 되기 전 자식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시켰다. 컴퓨터가 대세가 된 지금은, 초등학생들에게도 코딩을 가르친다고 한다. 옛날에 별난 애들만 하던 프로그래밍은 이제는 못하면 뒤쳐지는 필수교양이 된 것 같다. 25년 전 코딩 조기교육 (?) 의 혜택을 제대로 본 사람으로서 이에 대해서도 할 말이 적지 않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해 보아야겠다. 


속된말로, 자식이 좋은 대학 가려면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나는 할아버지의 재력도 없고, 엄마의 정보력도 없는데 아빠가 관심까지 많았다. 좋은 대학은 못 갔어도 나름대로 교육받고 큰것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만큼 자식교육에 관심을 가질 자신은 없다. 그래도, 다음 세대에는 무엇이 대세가 될지, 그래서 자녀에게 어떤 소양을 미리미리부터 갖추게 교육할지 고민이 되는 요즘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