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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의 생각모음

주 52시간 근무 단상

by 데이빗_ 2020.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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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다 차서 일찍 집에 가야 해요

 

얼마전, 우리팀 신입사원이 굉장히 어렵사리 이야기를 했다. "저.... 책임님 죄송한데,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해 보아야 할것 같습니다." "네, 그러세요 수고했어요~" 별 생각없이 그렇게 대답했는데, 옆자리 동료가 그랬다.

"ㅇㅇ이가 오늘 왜 일찍 갔는지 아세요?"

"아뇨, 왜, 무슨 일 있나요?"

"시간이 다 차서 더 이상 근무할 수가 없대요"

이야기인즉슨, 주52시간 근무제로 인해 회사에서 주당 초과근무 시간이 12시간으로 정해져 있어서, 이미 그 시간을 초과했다는 것이다. 그 시간을 넘어서 근무를 하게 되면 정식으로 근무를 올리지도 못하고, 무료봉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나도 그랬다. 경우에 따라 일이 몰리는 시기가 있는데, 그런 시기에 집중적으로 일하다 보면, 주당 12시간 넘게 오버타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함께 일하는 주니어 구성원이 얼마나 야근을 하는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는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서, 중간관리자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시간제한이 없었다면 돈이라도 받고 일하지

 

옆자리에 팀장님이 계시는데, 대기업에서 팀장이라는 자리는...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신세대 구성원들 지휘감독도 해야하고 임원들 등쌀도 견뎌내야 하는, 그야말로 3D 업종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우리 팀장님은 늘 근무시간이 60시간을 넘어서, 일하다 말고 컴퓨터를 끄고 집에 가야 하는 상황도 벌어지곤 했다. 그런 경우에도 52시간까지만 근로수당이 나오고, 나머지는 그냥 무료봉사 시간인 거다. 일이 많고 힘든 것은 그렇다 해도, 주52시간 제한이라도 없었으면 돈이라도 받고 일했을 건데...

 

Work Hour

 

초과근로를 주12시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 두었으니 일하다 말고 집에 갈 권리도 생긴 거겠지만, 관리자처럼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경우에는 법으로 정해 놓은 이상의 초과근로는 사실상 무보수로 일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일률적으로 초과근로 상한제 몇 시간이라고 정해 두면, 모든 직종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차라리 주40시간 이상 근로하게 되면 1.5배라고 명시적으로 해 두고 근무시간의 상한선을 정해두지 않으면, 일이 많아서 고되고 힘들어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으면서 일하기라도 할 텐데. 뭐, 내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그럴까봐 52시간 안 채우고 일하니까 ^^ 그래도 유연근무제라고 해서, 주마다 끊지 않고 4주에 초과근로 48시간 내에서 자기가 알아서 조절하면 된다는 점은 그나마 편한 것 같다. 

 

강제로 야근을 없애면?

 

옛날에 어떤 기업은 그랬다고 한다. "이제부터 우리 회사는 야근을 안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야근의 근거를 없애기 위해 초과근로수당 신청 자체를 막았다고 한다. 겉으로는 야근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야근할 수밖에 없는 업무 구조가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일률적으로 제도로 규제하면, 그 피해는 노동자들이 받겠지... 그 혜택은? 야근수당을 아낄 수 있는 회사가 가져가는 거고.

 

Overtime

 

 

경직된 제도의 폐해

 

몇 일 전에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사상 최장 시간 필리버스터를 했다고 해서, 국회 회의록을 다운받아서 읽어 보았다. 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한 사람당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같은 일감을 소화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가정을 하면, 근로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이는 대표적인 정책실패의 사례이다. 저임금 산업의 경우에는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 대기업의 경우는 한 사람을 더 구하기 위해 드는 비용이 엄청나고, 나중에 인력조정이 안 되는 걸 뻔히 알기 때문에 쉽게 사람을 쓸 수가 없다." → 그러면 결국은 기존의 노동자들이 초과근로 수당도 못 받고 일하는 수밖에. 

 

산업과 직군에 따라 노동정책이 유연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저녁밥을 먹을 수 있는 삶이 간절한 사람도 있다. 노동조건이 열악하다면, 당연히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 거다. 자연히 더 좋은 조건을 찾아 가겠지. 윤의원의 말에 따르면, "젊은이들이 직장을 고를 때 보면 워라밸을 굉장히 중시한다...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맞춤형으로 제공해서 근로자 복지를 향상하고 그것이 또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면 사용자로서도 마다할 일이 아니다."

 

윤의원은 이렇게 주장한다. "규제나 정책이나 제도도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디자인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근로시간 규제는 어마어마하고 단호하고 급속하게 시행됨과 동시에, 부문간의 생산성 격차라든가 업무의 특성 등에 대한 고려가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는 법과 규제를 통해서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정책 입안자들의 철학과 자유주의에 대한 소양이 얼마나 중대한 요소인지를 요즘 들어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하다 못해 한 회사에서 정책을 결정할 때도 효과와 부작용을 심도있게 따져서 신중하게 결정한다. 특히 무언가를 규제하는 정책은 정말 조심조심, 최소한으로 설계되고 집행된다. "급진적인" 정책의 힘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집권 세력의 태도는,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철학이 얼마나 위험한지 짐작하게 한다.

 

사상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한 윤희숙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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