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대선 관전평 (feat. 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들어가며
최근 있었던 대선에서 보수정당 윤석열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5년만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팽팽한 접전 끝에 당선되었지요. 개표를 보는 저도 심장이 쫄깃쫄깃했는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긴장이 되었을까 싶네요.
<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라는 책이 생각나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서, <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라는 책이 생각이 났습니다. 몇 달 전에 읽으면서 소개한 책이기도 하지요. 영국의 토리당과 휘그당의 대립과 갈등, 경쟁사를 통해 영국의 보수정당이 어떻게 명맥을 유지해 왔는지를 소개하는 책이었습니다.
아젠다 셋팅과 결집력은 진보가 한수 위인 듯
진보진영은 사회 구조의 변화와 개혁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이다 보니, 이념적으로 명확한 지향점을 설정하기가 용이하지요. 그리고 그 지향점을 중심으로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기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진보진영은 아젠다 설정에 매우 능했지요.
기본적으로 선거에 불리한 보수정당
하지만 보수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어떤 정치 아젠다에서든 항상 수세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당의 이념이 곧 실용성과 유연성을 발휘하게 된 근원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수는 기본적으로 급격한 사회의 변혁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선호합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현 체제에서 형성된 기득권의 이익을 지키는 결과를 낳게 되지요. 어떤 의미에서는 기득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급격한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보수정당은, 책에서 언급한 대로, “가진자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서 변화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기도 한 것이지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영국의 보수정당은, 개혁에 대한 완고한 반동세력으로서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진보에서 비판하는 그대로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해” 유연한 변화를 선택해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작정 완고하게 있다가는 가진 것을 다 빼앗길 테니, 어쨌든 실용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완고하기 때문에 유연한 역설
이런 점에서 보수정당은 정치적으로 진보진영보다 유연할 수밖에 없는 이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진보진영이 명확한 정치적 지향점을 가지고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특정인에 대한 맹목적 지지나 Align 으로 변질되기도 했지요) 아젠다를 세팅하는 동안, 보수진영은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또는 진보쪽에서 비판하는 대로 “부자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시대적 흐름을 받아들이고 변화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뭐랄까요... 국민의힘, 또는 그 전신인 미래통합당, 자유한국당, 새누리당, 한나라당 등등은, 고루하고 완고한 틀딱들의 보수정당 이미지에 걸맞지 않는 새로운 시도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들을 꼽아 보자면, 19대 총선에서 최초로 귀화한 외국인을 비례대표에 공천했고,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배출했고, 그 대통령을 자기들 손으로 탄핵시키고, 김병준, 김종인 같은 분들을 비대위원장에 추대하기도 했고, 최초로 30대 젊은이를 당대표로 뽑고, 놀랍게도 자기들을 궤멸시켰던 검사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지요.
마치며 : "살아남기"위해 몸부림치는 게 숙명인 보수정당
살아남겠다고 한 조치들이지만, 비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게 보수정당의 숙명이니까요. 시대정신에 역행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자유를 존중하고,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서 변화할 부분은 변화하는 정당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