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지 (2) : 불완전한 기억을 보완해 주는 기억술
과거의 어떤 사건을 이야기할 때, 다른 사람과 기억이 크게 달라서 당황하신 적이 한번쯤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이런 오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대로 저자는, 인간의 마음을 진화의 과정에서 임기응변식의 최적화가 누적된 클루지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써 처음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맥락 의존적인 기억"이라는 것이죠.
우리의 기억은 사실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저장될 당시의 상황과 다시 떠올릿 당시의 상황, 그리고 맥락 등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또한 기억은 우리가 떠올릴 때마다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왜곡되고 오염 된다는 것이죠.
인간의 마음이 정교한 설계의 결과물이었다면, 기억은 이렇게 오염되지 않았겠지요. 메모리 회사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언급해 보자면, 메모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데이터 무결성이죠. 즉, 시간이 지나도 완벽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야 하고, 혹시 에러가 생길 때를 대비해서 각종 패리티까지 붙여서 기억하는 방식으로 동작됩니다. 그래야 신뢰성 있는 디바이스가 나올 수 있겠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간의 기억은 위와 같은 정확 무결성을 염두에 두고 발달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인간의 기억은 그저 급박한 상황에 바로바로 대처 할 수 있도록, 다소 부정확하지만 신속한 기억의 인출에 염두에 두고 발달되어 왔다고 합니다.
당장 먹을 것을 구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또는 적에게서 도망쳐야하는 위급한 상황에서는, 정확하고 정교한 기억보다도 가장 최근의, 또는 가장 빈번하게 만났던 상황을 바탕으로 빠르게 추출하는 것이 생명을 보존하는데 더 유리했겠죠.
그런 특성들이 자연 선택을 거듭되어 오다 보니 인간의 기억은 이와 같이 부정확하고 오염되고 왜곡될 수 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현대인들이 만나는 수많은 상황들, 예를 들어 학습이나 업무 또는 관계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맥락 기억보다는 정확한 기억이 요구될 때가 종종 있지요.
인간의 기억이 부정확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실수를 예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기억을 지나치게 확신하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기억의 신빙성을 더할 수 있도록 "내가 어떻게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지" 등의 단서를 함께 떠올려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기억이 맥락에 의존한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할 때는 "스토리라인 안에서" 기억하는 것도 좋은 기억술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별 요소를 그냥 무작정 반복해서 외우는 것보다, 각각 요소들을 하나의 스토리라인으로 묶어서 기억할 수 있다면 더 효율적으로 기억하고 오래 갈 수 있겠죠. 빡라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는 건 바나나 같은 노래는 잘 잊어버리지 않는 것처럼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록이겠죠. 저는 기록 습관을 들이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때 그때마다 음성 또는 카메라로 메모하기도 하고, 펜을 가지고 다니면서 메모하기도 하고 여의치 않을 때는 휴대폰에 메모하기도 합니다.
무작위로 모아진 메모를 리뷰하다 보면, 과거 사건들의 맥락이 좀 더 촘촘하게 형성되고, 그런 그물망 속에서 중요한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더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되는 거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