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엄마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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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컴퓨터의 추억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러니까... 1994년 즈음에, 우리 집에 컴퓨터가 처음 생겼다. 카센타를 하시던 아버지는 486 컴퓨터를 쓰셨고, 나와 동생용으로 386 컴퓨터도 함께 구입해 주셨다. 그때는 집에 컴퓨터가 있는 친구들이 드물었다. 그런데 한 집에 두 대나 컴퓨터가 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려운 살림에 엄청나게 큰 투자였던 것 같다. 

퍼옴.

우리 가족 중에 컴퓨터를 쓸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나와 한살 어린 동생을 컴퓨터학원에 보내셨다. 그리고나서 우리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배우시려는 계획이셨다. 한달쯤 지나고 나서 무얼 배웠는지 물어 보셨는데, 글쎄,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그림판 여는 거랑 타자연습 프로그램 실행하는 정도였다. 그것도 공책에 다음과 같이 적는 식이었다. 

한메타자연습 실행

CD\
CD HTT
HTT.exe

그림판 실행

CD\
CD PAINT
PAINT.exe


게임 실행

CD\
CD GAME
CD GOINDOL
GOINDOL.exe

 

아니, 컴퓨터 학원에 한 달을 보냈는데 컴퓨터를 못 하다니?! 아버지는 아마도, 컴퓨터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며, 운영체제의 사용 방법, 구조, 그런 것들을 알기를 기대하셨던 거 같다. 물고기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 주어야지.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4학년짜리 애들에게 도스 운영체제의 사용 방법을 알려주면 아이들이 컴퓨터학원에 잘 가려고 할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했다. 

추억의 한메타자교사와 고인돌 게임

 

직접 컴퓨터를 배우기로 하신 아부지

 

아무튼, 컴퓨터 학원은 중단했다. 아버지는 직접 책을 사서 컴퓨터를 익히셨다. 아래 책이었던 것 같다. 디렉토리 (폴더) 구조, 파일 목록 확인하기 (DIR), 파일 복사, 지우기, 옮기기, 포맷, 백업, 복원 등등, 책을 보면서 하나하나 컴퓨터를 익히고 나서 나와 동생에게 알려 주셨다. 아버지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용산에서 컴퓨터 부품을 직접 사서 조립하는 것까지 배우셨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 컴퓨터도 많이 조립해 주기도 하셨다. 우리에게 컴퓨터를 판 영업맨들이 거꾸로 아버지에게 컴퓨터를 배워 가기도 했다. 지금이야 컴퓨터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드물지만, 그 때는 컴퓨터를 못 가진 사람도 꽤 되었고, 컴퓨터 할 줄 안다는게 꽤 희소성 있는 지식이었다.

 

추억의 컴퓨터책. 안녕하세요 MS-DOS

 

 

공부하는 부모님

 

내 기억에, 아버지는 늘 공부를 하셨다. 오토캐드도 책 보고 명령어 하나하나 배웠고, C언어도 익히셨다. 무슨 꿈이 있거나 비전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늘 밤에 불 켜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를 하셨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나서, 나는 시험공부를 하고 아버지는 컴퓨터 공부를 하다가, 밤12시에 편의점에서 같이 라면 먹고 들어왔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아버지는 뭔가 늘 공부를 하신다. 영어공부를 하기도 하셨고, 종교서적을 읽으면서 공부하기도 하셨고 등등... 

 

그렇게 아버지가 공부하시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서 그런지, 40을 바라보는 "아저씨"가 된 지금도 나는 뭔가 새로운 걸 배우고 공부하는 것에 그렇게 큰 결심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냥 책 보거나, 요즘은 강의도 잘 되어 있으니 강의 보고 하나하나 따라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다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가끔 내 또래 사람들을 보면... "공부" 라는 단어가 나오면, 이제 와서 무슨 공부를... 하는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써먹을 곳도 없고 지금 와서 대학을 새로 갈것도 아니고 직장을 옮길것도 아니라면 뭐하러 따로 공부를 하느냐는 반응이랄까.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건, 그만큼 가능성을 하나 더 가진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 그 쪽에서 기회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그것으로 뭔가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런 가능성을 떠나서, 어떤 의미에서는 ...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다는, 그리고 새롭게 뭔가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는 그 자체가 큰 즐거움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공부하면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돈도 밥도 나올 수 있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배우는 과정 자체를 보고 즐기는....

 

얘들아 엄마아빠도 공부한다!

 

무엇보다도, 아빠가 공부하는 모습을 통해서... 아이들이 "배움"이란 끝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이 들어서 새로운 것 배우는 게 전혀 이상하거나 큰 결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님을, 어쩌면 그게 당연한 것임을 몸소 가르쳐 주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관심가는 분야들로 책을 읽으면서 공부해보기로 했다. 컴퓨터공학에 관심이 많았으니 들여다 보고 싶다. 마케팅도, 전략경영도 공부해 보고 싶다. (이미 일부는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고).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컴퓨터 공부를 시작하셨는데, 우리 딸이 그 나이가 되려면 이제 4년밖에 남지 않았구나.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아이는 기억해 줄까?

 

같이 사는 짝꿍이 전공을 살려서 대학원을 가고 싶다고 한다. 아마 결심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준비 과정, 학비, 가사 및 양육과의 병행가능성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나이 되어서 무슨 대학원씩이나" 하는 생각도, 고민의 한몫을 했지 싶다. 학위를 받으면 그 기회비용을 다 회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도 포함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딸아이들이, 가정주부 엄마가 아이들 키우면서 학위 과정을 밟았다는걸 알면 얼마나 자랑스럽고 롤모델로 삼고 싶을까. (자식들에게는 뭔가 기억해주기를 기대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그리고, 나중에 좋은 커리어로 비용회수 하면 좋겠지만 설령 그러지 않는다 한들 뭐 어떤가. 공부하기 위해서 사는 거고, 공부하는 데 돈 쓴건데. 다만 그래도, 엄마아빠가 계속 뭔가 공부하려 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아 준다면, 그만한 보람도 없을 것 같다. 

 

 

 

 

독서후기 : 내가 공부하는 이유 (사이토 다카시)

● Overview | 사이토 다카시 교수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라는 책을 다 읽었다. 이 분의 책은 뭔가 와 닿지는 않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건질 내용들이 있다. “와 닿는 내용”이라 함은 “실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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