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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의 생각모음

영혼과의 대화

by 데이빗_ 2016.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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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과정은 힘들었다. 지금에서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지독히도 힘들었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도 많이 고갈된 상태였다. 국내 최고의 학교에 합격했다는 자부심은, 입학 전 실험교육 받을 때 진작 깨어졌다. 공동 실험이 있으면 밤이고 낮이고 실험실에 있어야 했다. 선배들 눈치 보랴, 실험 하랴, 틈틈이 논문도 읽어야 하고 실험실 내의 궂은일도 동기들과 함께 챙겨야 했다. 학기가 시작되면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해야 하는데,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하나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물론 실험실 업무 때문에 과제 할 시간을 따로 만든다는 것은 사치이기도 했다. 실험을 네 차례 다섯 차례 반복해도 예상한 결과는 나오지 않고, 직속 선배는 왜 결과가 안 나오느냐고 독촉하는 상황이 자꾸 반복되었다. 학과 수석으로 대학교를 졸업한 것은, KAIST 에서는 조금도 내세울 수 있는 명함이 아니었다. 나는 그냥, 어리숙한 석사1년차일 뿐이었다.

중학교 때 전교1등 하는 아이들끼리 과학고나 외고에 입학하면, 그 중에서 누군가는 1등을 하고 누군가는 30등을 해야 한다. 중학교 때까지 1등을 도맡아 하던 아이들이 특목고에서 석차가 뚝뚝 떨어지면 그 정신적 충격이 상당하다고 한다. 똑같은 것인지는 몰라도, 아마 대학원 1년차 때의 내가 그런 케이스였던 것 같다. 바닥으로 떨어진 자존심을 일으킬 수 있을까 싶어서, 과학고와 KAIST 학사과정을 졸업한, 이른바 "성골"이었던 동기에게 물어 보았다. 정말 중학교 때 1등 하다가 과학고 가서 성적이 떨어지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드냐고. 그 동기의 대답이 아직도 귀에 남는다.

“글쎄요.. 저는 그래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요?”

나는 성골이 아니었다. 한 6두품쯤 되었나보다. 어쩌면 나는 내가 있을 자격이 없는 곳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KAIST 대학원은, 본교 학부 출신이거나 서울의 상위권 대학, 지방이라면 거점국립대 정도는 되어야 입학할 수 있는 곳이었다. 중위권 사립대 출신인 내가 소위 “하나님 후광”으로 들어왔지만, 객관적인 내 실력은 여전히 부족했다. 최고가 되겠다는 집념도, 투지도 부족했다. 아, 나는 과연 이 험한 경쟁을 이겨낼 수 있을까. 끝도 없을 것만 같은 암흑을, 나는 과연 통과해 낼 수 있을까.

기댈 곳이 없을수록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매일 읽는 성경만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그 때만이 유일한 영혼의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무엘상을 읽으면서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다윗의 이야기 속에서, 시간에 쫓기고 실적 압박에 쫓기는 내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지. 그가 지은 수많은 시들을 모아 놓은 시편 속에서,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을 얼마나 많이 외웠던가.

시편을 읽으면서 나는, 침체된 마음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나름대로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것은 다윗처럼, 영혼에게 스스로 말을 걸어 보는 것이었다. 그는 시편의 여러 곳에서 자기 영혼에게 말을 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2편)” 와 같이. 마치 영혼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말을 하고 영혼을 격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와 같이 해 보기로 했다. 내 영혼아, 내 심령아, 왜 낙심하고, 왜 그렇게 처져 있니? 하나님을 바라자,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해 보자. 하면서.

내 안 깊은 곳에 있는 영혼은, 내 말로 격려를 받았다. 내 의지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영혼에 하신 말씀을 대언한 것이기도 했다. 영혼은, 입술을 통해 흘러나온 하나님의 위로로 격려를 받았고,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시시 때때로 내면을 강건하게 했고, 영혼을 단단하게 세워 갈 수 있었다. 속 마음이 견고하게 선 상태로, 다시 눈 앞의 현실에 밀리지 않고 담대히 돌파할 수 있는 힘을 얻곤 했다. 다윗도 그렇게 힘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혼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용기로 현실을 돌파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말을 조심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어도, 잊을 때가 많았다. 이따금 방심하거나 영의 감각이 무디어질 때 그랬다. 엄청난 경쟁과 스트레스 앞에 놓였던 석사 1년차 때, 방향키를 놓치고 헤매던 시절에 그랬다. 결과가 나오지 않는 실험을 반복할 때, 이해가 되지 않는 공식을 보고 또 볼 때, 지도교수님 말씀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숨이 턱까지 차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욥기 10장 1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던” 때가 있었다. “아무리 해도 소용없어”, “나는 역시나 안 되는 모양이다”, “이 정도 했으면 됐지 얼마나 더 하란 말이냐” 등등.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모르겠다고, 기도인지 불평인지 알 수 없는 하소연을 혼자서 얼마나 많이 했는지.

그런 불평 불만의 시간을 잠시 보내면서 한 가지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다. 시련의 시기에 “괴로운 대로 말하다”보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렇게 느끼는 대로, 보이는 대로 뿌려 놓은 말들이, 다시 새로운 씨앗이 되어 쓴 열매를 여기저기 키우게 될 뿐이었다.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고 싶을 때, 아무도 듣지 않는 불평을 하는 대신에 철저히 영혼을 격려해 주었어야 했다. 마치 험한 산을 함께 오르면서, “힘내자 다 왔다”고 하는 것처럼. 함께 손을 잡고 험한 길을 헤쳐 나가는 러닝메이트처럼,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격려해 주어야 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누구나 꼽는 명장면이 있다. 펜싱 선수 박상영이 패배의 위기에 몰렸을 때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라고 되뇌던 장면일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다”를 되뇌면서 투지를 다졌고, 결국 기적의 역전승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는 특별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지만, 긍정의 힘을 아는 선수였다. 그는 혼잣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주위 사람은 듣지 못했지만,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영혼은 긍정의 확신의 말에 반응했다. 박상영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난 뒤, 보이지 않던 상대방 선수의 약점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그는 평상시 자기에게 힘을 주고, 투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명언을 검색하고 외운다고 한다. 평상시에 갈고 닦아 놓은 말의 씨앗이, 절체절명의 그 순간에서 힘을 발휘한 것이다.

마음이 밝고 즐거워야 긍정적인 말이 나오기가 쉽다. 그렇게 쉬운 것은 누구라도 한다. 좀더 탁월한 결과를 만들고 싶다면, 내 안의 길동무인 (사실은 진짜 리더인) 영혼이 지쳐 있을 때, 입술을 움직여 영혼을 격려해 주어야 한다. 몸은 영혼에 의해 지배당하지만, 때로는 영혼도 내 입술을 통한 ”육체의 말“로 격려 받아야 할 때가 있다. 영혼과 마음이 지쳐 있다면, 입의 말을 사용해서 그를 격려해 주자. 영혼은 입술의 격려를 받고 다시 견고히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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