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면 뭐가 달라지나요?

기도하면 뭐가 달라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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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 모처럼 주말에 서울에 갔다가, 논현동 교보문고에 들릴 일이 있었다. 종교서적 코너에서 배회하던 중, 다소 도발적인 책 제목에 끌렸다. <기도하면 뭐가 달라지나요?>

크리스찬이 된 지 27년째, 여덟 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나갔으니 모태에 준하는 신앙교육을 받은 셈이다. 주일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늘 기도를 해 왔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고 배웠고, 기도의 능력은 산을 옮긴다는 믿음을 굳게 가져 왔다. 그리고 꽤 많은 응답을 경험했다. 나 역시 기도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굳이 “꽤 많은 기도응답”이라고 쓴 것은, 모든 기도가 “전부” 응답된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분명히 어떤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다. 대학원 시절 좋은 연구 결과를 위해 부단히 기도했던 것들의 대부분은 응답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즉각적인 개입을 요청했을 때 기도는, 대부분 내가 기대했던 방식으로는 응답되지 않았다. 딜레마가 아닌가. 기도의 능력을 믿으면서도, 어떤 기도가 응답되고 어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응답될지 안 될지 모른다면, 기도는 왜 하는 것일까? 기도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가치와 유익은 무엇인 것일까?

내가 가진 딜레마는 이런 것이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기도는 마치 자판기나 컴퓨터처럼 입력된 조건에 따라 정해진 대답을 내놓는 기계적인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을. 기계적인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은 아는데, 그러면 기도가 “무엇이라는 것”인가? 기도가 자판기가 아니기에 누군가에게 “이러이러한 조건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도해 봤자 말짱 꽝입니다”라고 말하기에는 내 삶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을 너무나 크게 힘입어 왔기에, 그렇게 말할 수도 없었다. 기도가 자판기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그러면 기도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기도에 대한 내 스탠스를 어느 정도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기도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께 무엇을 받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수단이고, 그분과의 친밀감을 증진시키는 방편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가지게 되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시선과 마음으로 내가 처한 환경과 주위 사람을 살필 안목을 얻게 된다.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에 매몰된 가치관을 교정하고 영원한 가치를 귀하게 여길 기회를 가지게 된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즉각 개입하시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방법으로 개입하시기도 하신다. 어떤 경우에는 환경보다는 기도자의 마음을 바꾸기도 하시고, 쉬운 길보다는 기도자의 역량이 강화되도록 독려하시기도 하신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기도자의 내면과 영성은 성장하고, 환경이 바뀌지 않아도 능히 이겨 내고 견뎌 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읽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무언가를 구하는 기도는 대부분 그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음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뭐하러 간구 기도를 하는가?” 저자는 격려한다. 이루어지든 그렇지 않든, 때로는 이기적인 내용이라 할지라도,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거친 표현이라 할지라도 다 기도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 아뢰는 그 자체가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말한다.

저자는 실제적인 기도의 방법에 대해서도 몇 가지 권면을 하고 있다. 형식에 얽매이지 말 것. 조용한 나만의 장소를 찾을 것. 자유롭게 아뢰고 싶은 말씀을 아뢸 것. 때로 기도가 막히고 마음이 건조해질 때를 대비한 비책도 주고 있다. 미리 정해진 기도문을 낭독하는 것도, 자기중심적 태도에 사로잡히지 않고 균형있는 기도를 드리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시편을 활용한 기도가 유용할 것이고, 공교회에서 사용되어 온 공식기도문 등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편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고 생각을 깊이 하며 묵상하는 훈련을 하다 보니, 가치있는 행위일수록 즉각적인 결과물을 가져다주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가 그렇고, 독서가 그렇고, 성경 읽기가 그렇고, 기도도 그 중 하나인 것 같다. 옛날에는, 얼마든지 즉각 들어 주실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께서 왜 기도를 즉각 들어주지 않으실까 궁금하기도 했고, 왜 꼭 사람이 원하는 대로 들어주지 않으시는 것일까 의문스럽기도 했다. 이제는 조금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자판기나 주문처럼 즉각적인 결과를 기대하기보다도, 장기적으로 축적된 경험이 영적 자산이 되도록, 그렇게 긴 호흡을 가지고 기도해야겠다. 쉬운 시험문제를 바라기보다는 어떤 문제든 풀 수 있도록 실력을 키우는 것이 더 유익한 것이듯, 당장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한 기도보다는 그것 없이도 자족할 수 있는 능력을 위해서 (빌4:13) 기도해야겠다. 즉각적인 상황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기보다는, 그런 상황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심령의 크기와 내면의 견고함을 도모하기 위한 기도를 해야겠다.

<기억에 남는 내용>

기도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 준다. 우리는 너무 분주하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기도는 있는 모습 그대로 드려야 한다. 죄를 고백하는 것은 피조물이 창조주 앞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과정이다. 인간의 무력감을 가지고 그대로 나아가자.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이 필요하다. 겸손한 마음으로 나가자.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정직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기도는 거래가 아니라 관계이다. 하나님은 공식에 따라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다. 관계란 본디 다이나믹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고요한 가운데 마음을 정돈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도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파트너십을 유지하셨다. 기도는 친구와 친구의 사귐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친밀감을 유지하고 싶어하신다. 기도는 솔직한 마음의 표현이 중요하다. 불평, 절망의 표현, 모든 것이 다 표현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사람과 동행하길 원하신다.

기도하면 뭐가 달라질까 : 기도한다고 핍박이 멈추거나 학대가 멈추는 것 같은 이펙트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환난 중에 있는 그 사람은 기도가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고백한다. 세상 권세에 연연해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일수록, 기도를 통해서 더 위대한 권세에 다가설 수 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신뢰한다. 기도는 결국 스스로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 준다. 낙심하거나 지치지 않는 힘이 기도로부터 나온다.

우리의 기도 자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의미하게 만든다.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나의 신뢰에 영향을 준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세계관이 바뀐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를 통해 뜻을 바꾸시기를 기꺼이 선택하셨다.

역사란 곧 믿음에 대한 시험이며, 거기에 올바르게 반응하는 방법은 끈질긴 기도뿐이다. 때로는 성가시게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유롭게 역사하시게 하는 도구이다. 음부의 문이 기도의 권세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 약속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끈질기게 구하는 태도를 귀하게 여기셨다.

기도는 결국 훈련이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하다. 더 많이 기도할수록 더 잘 하게 된다. 훈련으로 생각하면 하기 싫어도, 하나님과의 동행과 교제로 생각하면 더 연습하기 쉽다. 도움이 되든 말든, 꾸준히 계속 기도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기도를 통해 믿음을 공급받고, 나와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기도로부터 나온다;.

주기도문이나, 시편, 성경에 나온 기도의 모범을 참고하면, 자기중심적인 기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른 이의 기도를 빌려 쓰는 것은 영적으로 고갈된 시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까 : 마음의 소원을 아뢰자. 있는 그대로, 때로 감정이 힘들 때는 탄식의 기도를 드리자. 죄를 고백하는 것이 필요하다. 평안과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기도할 것. 어려운 이들에게 긍휼 베푸시기를 위해 기도할 것.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기도할 것. 어려움을 이겨내는 믿음과 힘을 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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