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서 재택 근무가 조금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자가격리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재택 근무자가 발생하고 있지요. (부서에 따라 다르겠지만) 반드시 사무실에 있어야만 업무가 지장없이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직간접적으로 입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말단 관리자가 되고 나니, 만약 재택 근무가 활성화되어서 저 친구가 물리적으로 내 옆에 없다면 일이 원활하게 잘 돌아갈까?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해 보게 됩니다.
오랫동안 일하는 것의 미덕?
여러 회사들이 보통 사무실에서 최소 40시간 이상을 근무해야 한다는 규정을 가지고 있지요. 저희 회사도 자율 출퇴근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만, 주간 최소 근무시간이라고 해서 사무실 내에서 최소 40시간을 체류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자유로운 재택 근무나 근무시간의 완화 등은 아직 적극적으로 검토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존에 해오던 관행이나 문화가 한 번에 바뀌는 것은 쉽지는 않겠죠.
특히 팀장이나 임원급의 관리자는, 휘하 구성원들이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야 불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접 팀끼리 야근하는 사람들의 숫자로 은근히 비교당하기도 하고, 업무상 이슈가 터지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요즘 다들 일찍 가더니!" 라는 식으로 혼나는 경우도 간혹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사무실에 오랫동안 남아 있으면, 즉 상사에게 오랫동안 얼굴을 보이면 더 헌신적인 직원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겁니다. 대략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있겠네요.
긴급한 협업 대응상 필요성
물론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이 필요하긴 합니다. 그리고 가급적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리더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죠. 업무에 관해서 무언가 물어보거나, 상호간에 토론이 필요할 때 담당자가 자리에 없으면 불편함이 수반되겠죠. 긴급한 대응이슈가 생겼을 때 사무실에 없으면, 대응이 늦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절대적인 성과와 시간의 비례성
물론 제가 종사하는 연구개발 직종에서 성과를 내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투입되어야 하는 게 사실입니다. 데이터를 많이 보고 해석하고, 다른 사람의 자료도 많이 읽게 될수록 시행착오도 줄어들고 개인의 업무 역량도 늘어나게 되지요. 체크리스트를 꼼꼼히 챙길수록 사고나 시행착오의 위험도 줄어들 것입니다. 많은 생각을 할수록 개선 방향과 아이디어도 잘 떠오를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성장했고, 오랫동안 회사에 머물면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으로 평가하는 관행의 문제점
절대적인 근무시간을 투자할 필요성이 여럿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직원의 근무시간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겠네요.
장시간 근무에 따른 비효율성
하지만 BBC 뉴스에 따르면 실제로 사무실에 많이 앉아 있는다고 해서 더 생산적이지는 않다고 하네요. 어떻게 측정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연구에 따르면 불필요하게 사무실에 남아 있는 관행 때문에 1인당 연간 35일의 근무일이 손실된다고 합니다. 주당 근무 시간도 50시간이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하는군요. 사람은 기계가 아니지요.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누적되면 업무 효율성과 자발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율적인 동기 부여의 제한
오랫동안 남아 있어서 높은 성과를 달성하는 사람은, 그만큼 Self Motivation 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욕심도 있고 경쟁심도 있어서, 이 부분에서 역할을 다해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탑재되어 있는 사람이지요. 그런 모티베이션은, 늦게까지 남으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적절한 모티베이션이나 성과에 대한 목표의 정확한 정의 없이 업무 시간을 직접적으로 컨트롤하는 것은, 직원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효과가 없다"는 걸 떠나서, "자율성이 제한받고 있다" 라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이지요.
리더들이 집중해야 할 것들
성과와 목표에 대한 정확한 정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무실에 사람들이 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직원들의 업무를 정확히 정의할 능력이 부족하거나,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방법에 서툰 리더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한 지인이 근무하는 직장에서는, 직원들이 코로나 때문에 격리되어서 재택근무를 할 때, 매일 무엇을 했는지 데일리 리포트를 제출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데일리 리포트가 필요할까요? 일을 시키면 되지요. 일이 어디까지 진척되었는지 체크하고, 미진하면 그에 대해 피드백을 주면 됩니다.
직원들이 늦게까지 남아 있을 것을 요구하는 대신, 개개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어떤 성과물을 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해주어야 합니다. 구성원이 똑똑하거나 시간을 잘 써서, 리더가 요구한 것을 다 다 수행하면서도 시간이 남으면, 일찍 가면 되는 것이죠.
그래도 굳이 직원들이 더 늦게까지 남아 있기를 원한다면, 도전적인 납기를 설정하거나 도전적인 성과 수준을 제시해서 업무의 양을 조절해주면 될 일입니다. 바람직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인정 욕구나 성취 욕구의 고취
좀더 고차원적이라면, 직원들 개개인이 스스로 모티베이션 될 수 있도록 안에 있는 욕심이나 욕망을 깨워 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당신이 지금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고 있으며, 지금 맡은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일인지를 알려주는 과정이 필요하겠지요. 그렇게 해서 Self motivation 된 인재 풀을 가지고 있다면, 늦게 남으라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늦게까지 열정적으로 일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업무"로써 직원들을 컨트롤 해야 하는 것이지, 시간으로 컨트롤하면은 회사 입장에서의 가성비는 그만큼 떨어지게 될 겁니다.
언택트 스타일의 협업을 위한 준비
자리에 있든 없든 성과로써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당장 해결하거나 대응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는데 담당자가 부재중이라면 즉각적인 조치가 쉽지 않지요.
개인적으로 저 같은 경우는, 후배 사원들이 사무실에 출근해 있거나 휴가 중이거나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는 것이죠. 자리를 비울 일이 있다면, 그 사이에 업무가 차질 없이 일이 진행되도록 동료들에게 인수인계를 잘 해놓고 가면 될 것입니다.
요즘같이 코로나 시국에서 불가피하게 2~3일, 경우에 따라서는 2주까지도 사무실을 떠나 있어야 하는 상황을 경험해 보면, 물리적으로 함께 있지 않기 때문에 일에 큰 차질이 생기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부재중일 때도 차질이 생기지 않았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언제든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도록 개개인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일과 삶의 밸런스, 그리고 일과 삶의 엄격한 분리가 강조되는 요즘 시국에서, 휴가중인 동료에게 업무로 전화하는 것은 큰 실례이죠. 직원들을 시간으로 묶어두지 말고 성과를 보여주게 하자.. 라고 하면서, 부재중일 때 전화하는 게 실례라는 건, 상충되는 가치인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휴가중에 전화받기 싫으면 전화할 일 생기지 않도록 잘 인수인계 해놓고 가면 될 거 같기도 한데, 일이라는 게 그렇게 사전에 다 예측할 수 없는 경우도 존재하게 마련이지요. 이 부분은 좀더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치며
사무실에 오래 남아있지 않으니 불성실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 또는 습관인 것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근절되기가 쉽지는 않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어떤 시스템이든 시간에 따라서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시간이 갈수록 규제가 점점 완화되어 점점 자유로운 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평가와 보상의 요소로서 "사무실에 있는 시간의 양"을 반영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바람직하든 그렇지 않든,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죠. 그럴 때를 대비해서, 물리적으로 함께 있지 않아도 유기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개인 차원에서든 조직 차원에서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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