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성적이 가장 중요하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대학원을 가기로 결심했다면 학부 성적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만약 Top Level 의 대학원을 가는 것이 목표라면 학부 성적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대학원을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모든 스펙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연구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우수한 학부 성적을 목표로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겠지요. 대학원은 대개 그런 사람들이 지원하고,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성적이 더욱 우수한 학생들이 선발되는 곳입니다. 만약 출신 학부가 서울 중위권 이하 대학이라면, 그리고 서울대나 KAIST, POSTECH 등의 우수한 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4.0이라는 성적은 "서류를 통과해서 면접장에 가 볼 수 있는" 최소한의 점수일 것입니다.
성적이 그 학생의 모든 것을 다 말해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대학원을 진학하기 위해서는 성적이 제일 중요합니다. 상위권 대학이 아닌데도 누적 평점평균이 3.5 (평균 B+) 조차도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이라면, 대학원을 갈 자질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공부에 열정과 헌신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단언하면 듣는 분들 중에는 "평균 성적이 B+ 이면 공부에 열정이 없는 거야?" 하고 반문하시는 분도 계시더라구요.
제 대답은, "당연히도 그렇습니다"입니다. 늦게나마 공부에 열정이 생겨서 대학원을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그런 반문을 할 시간에 재수강을 하든 계절학기를 듣든 평균 성적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성적이 좋지 않다고 인생이 저품질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대학원은 힘들어요. 충분한 전공지식이 갖추어지지 않은 학생은, 대학원에서 연구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서류 통과가 어렵고, 전공 면접을 통과할 수도 없고, 랩 생활 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내가 학문을 연구할 자질이 충분한지에 대해 주관적 평가는 모호할 수 있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모를 때가 많으니까요. 성적증명서를 한 번 떼어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명문대가 입시에 유리한가요?
불편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학부 출신 학교가 소위 “잘 나가는 명문대학”이 아니라면, 학점 관리는 앞에서 더더욱 중요합니다.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게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만약 대학 입시에서 출신 고등학교가 어디냐에 따라 가산점, 혹은 감점을 준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겠지요. 고등학교 선택권은 제한되어 있고, 출신고의 평판은 학생 개개인이 제어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부 자립형사립고나 특수목적고등학교와 같이 제한된 선택권이 있었다 해도 (즉, 중학교 때 공부 잘 해서 좋은 고등학교 갈 기회가 있었다 해도), 중학생까지는 선택에 대한 결과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나이라고 기대하기는 - 즉, ‘좋은 고등학교 가산점을 받고 싶었다면 중학교 때 열심히 했어야지!’ 라고 말하기는 – 어렵겠지요.
하지만 대학원 입시에서 출신 학교에 따른 입학심사관들의 선호도가 반영되는 것은 오로지 지원자가 감당할 몫입니다. 학생에게는 충분한 학교 선택의 자유가 있었고, 선발에 있어서는 선발권자의 재량이 폭넓게 인정되기 때문이지요. 마치 취업 관문처럼요.
공식적으로 학부가 어디냐에 따라 차등 점수가 배정된다고 인정하지는 않으나, 저와 함께 했던 연구실 학생들은 절대 다수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또는 KAIST 본교 출신 학생들이었습니다. 가끔 지방 거점 국립대학 출신도 있었는데, 그들은 그 학교 내에서 1,2등을 다툴 정도로 성적이 우수한 자원이었죠.
입학심사관들이 명문대 출신을 선호하는 것은, 명문대학 네임밸류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오랜 시간 다양한 학부 출신들을 받아 가르쳐 본 경험상 학업에 대한 열정과 치열함을 지녔다고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최고가 되어 본 경험이 있어서, 2등 하고는 못 견디는 사람들을 선호하기 때문이지요.
대학원은 기회를 균등히 보장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와야 좋은 연구 결과를 확보할 수 있고, 그래야 학교의 위상과 실적도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상위권 대학 출신이 아니라고 해서 미리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위권 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것은 그 사람의 능력이 명문대 출신만큼 통계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을 뿐이지, 학문적 능력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니까요. 따라서 출신 학교의 네임밸류를 활용하기 어려운 처지라면, 본인이 배울 준비가 되었고 연구자로서 자질이 있음을 확실히 입증해 주어야 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학부 성적이지요.
전공과목을 최대한 많이 이수하기
대학원 입시를 통과한 예비 입학생들은, 지도교수를 정하기 위해 연구실별 선발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이 때, 지도 교수님이 직접 면접을 보는 경우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연구실의 학생들이 1차 면접을 통해 학생들을 스크리닝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석박사 과정을 보냈던 연구실은, 박사과정 학생이 연구실 지원자를 1차적으로 면접하곤 했습니다. 박사 과정 5년을 보내면서 연구실 지원자를 면접할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저와 동기였던 형님 한 분의 독특한 관점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 형은 연구실에 지원한 학생의 성적증명서를 유심히 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얼마나 좋은 성적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전공과목을 들었느냐”를 유심히 살펴보더군요.
그 형은 “전공 과목을 많이 듣지 않은 학생들은 대학원에 오면 안돼” 라는 말을 되뇌곤 했습니다. 전공 과목은 최소한만 이수하고 나머지 학점을 교양으로 채운 학생들에게는 좋은 피드백을 주지 않았지요. 100%는 아니지만, 저도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
전공 한 과목을 더 듣는다는 것은, 그만큼 전공지식이 넓어졌다는 걸 의미하지요. 그 넓어진 지식이 기존의 전공지식과 연결되어 좀더 촘촘한 지식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됩니다. 전공 과목들은 서로간에 내용적 거리가 가까워, 서로 연결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지요.
재미있어 보이는 교양과목 듣는 것도 좋습니다만,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할 학생들은 무엇보다 전공과목에 대한 열의와 충분한 지식을 연마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공과목을 많이 들은 사람들이 전공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도 많겠지요. 듣지 않은 과목에서 면접 질문이 나오면 꿀먹은 벙어리가 될 테니까요.
학자로서의 기본을 연마하는 과정으로서 전공과목을 최대한 많이 이수하는데 집중한다면, 대학원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데도 유리할 것입니다.
시험을 잘 보았다는 것, 그 이상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것은, 학과 시험을 잘 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필요 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시험 문제는 대개 교수님께서 출제하시는 범위 내에서 정해진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이죠. 어쨌든 그 부분의 지엽적인 지식을 알고 있으면 풀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성적을 잘 받는 것은, 실력을 입증하는 가장 최소한의 요구 조건일 뿐입니다. 대학원에 입학하려는 사람이라면 단지 학교 성적을 잘 받는 것에서 만족하지 말고 자기가 배운 그 과목에서 어떤 질문이 나와도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는지 계속 점검해야 됩니다.
대학원 입시에서는 전공 면접이라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지요. 면접관들은 지원자를 깐깐하게 스크리닝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교가 아니라 타 학교 출신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자기가 가르치지 않은 학생일수록 깐깐하게 심사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특정한 전공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과 그 과목 내에 어떤 내용에 대해서도 질의응답이 가능할 정도로 깊이 있게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다른 수준입니다. 특정 지식에 대해서 '왜 그런지' 를 두세 번 파고 들어갔을 때 막히는 부분이 한두 가지쯤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개 그런 개념들은 많은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워하는 내용일 가능성이 많지요.
문제는, 면접관들도 이걸 안다는 겁니다. "왜 그런지"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이 면접에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막힘 없이 설명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해야, 긴장되는 면접 현장에서 잘 대응할 수 있겠지요.
물론 소위 '족보'라고 불리는 기출문제가 있기 때문에, 해당 내용 위주로 공부하면 대부분 커버가 되겠지만, 항상 변칙출제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지요.
따라서 전공 과목, 특히 2~3학년에서 배우는 전공기초 과목에 대해서는 (시험을 잘 보는 건 기본이고) 주요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필요합니다.
지식이 탄탄해지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
전공지식에 대한 기초 개념이 부족하면 학위 기간 내내 고생합니다. 연구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고, 수업을 따라가는데도 많은 난관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타 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들은, 교수님들의 티칭 스타일의 차이에서 오는 혼란도 상당하겠지요.
아마 중고등학교 때 비슷한 경험을 해 보신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확률통계에 대한 기초 개념이 부족했는데, 이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왠지 어려웠고, 그러다 보니 들여다보기 싫었고, 그러니 더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수험 기간 내내 고생했습니다. 항상 손톱 밑에 든 가시처럼 계속 불편했지요. 대학에 가면 확률통계를 안 해도 될 줄 알았는데, 전자공학과에서는 확률통계가 매우 중요하거든요.
개념이 부족하면 실질적인 지식이 부족할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심리적인 위축도 따라옵니다. 때문에 자기가 실제로 잘 할 수 있는 다른 영역에서도 능력치가 제한됩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를 전공하는 학생은 고체물리와 양자역학의 기초 개념은 확실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확실한 기초 개념만 있어도, 논문 볼 때 (다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무슨 말 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복잡한 수식이 나오는 논문을 읽고 이해할 수 없겠죠. 오랫동안 전공 지식을 바탕으로 학술활동을 하게 될 테니, 대학원 지망생들은 전공에 대한 기초 개념은 특별히 다른 사람에게 자세히 설명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시험에 나올 테니까, 안 하면 안 되니까, 등의 동기는 단기간 집중하게 할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모든 걸 완벽하게 다 알 수는 없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알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모르는 걸 알아 가는 즐거움, 그러면서 점점 더 전문가에 가까워진다는 성취감, 탄탄한 실력을 갖춘 과학자, 또는 공학자에 가까워져 간다는 자부심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완벽해지진 않겠지만 점점 완벽함에 다가가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관건은 압박 면접을 통과하는 것
저는 면접장에서 굉장히 까칠하고 까다로운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질문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기초가 조금 부족한 분야에서 질문을 하셨죠.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자니 너무 성의 없어 보일 것 같아서, 최대한 알고 있는 주변 지식들을 동원해서 대답을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신 교수님의 말씀이, 소위 '뼈를 때리더군요.'. "자네는 말은 잘 하는데, 아는 게 없는 것 같아. 그래서 학위 할 수 있겠나?" 이 말 듣고 '여긴 합격하기 어렵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은, 압박 면접을 통과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겠지요. 서류는 학교시험 잘 본 것으로도 통과할 수 있지만, 면접은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질 않더라고요. 같이 면접 보러 온 모든 지원자들이, 다 우수한 성적으로 서류를 통과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떤 과목을 어려워하는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면접장에 앉아 있는 교수님들은 학생 스스로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분들입니다. 빙빙 돌려서라도 답을 하는 게 낫겠지만, 결국 어설프게 아는 것은 들통이 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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