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두 글에서, 짧은 소견과 경험을 바탕으로 학부생이나 학사 출신 회사원 등 대학원 생활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글을 써 보았다. 요지는, 다소 길게 이야기했지만 어쨌든, 멋진 실험가운을 입고 폼나게 연구하는 연구원의 모습과 대학원 생활은 다소간의 괴리가 있다. 어떤 경우든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겉모습과 실제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이해하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2020/12/05 - 대학원 진학을 고민한다면 (1)
2020/12/06 - 대학원 진학을 고민한다면 (2)
학위생활을 하면서 보았던 사람 중에, 성과도 좋고, 좀더 행복하게 연구 생활을 이어가는 동료들을 많이 보았다. 뒤늦게 깨달은 점들을 포함해서, 다음과 같은 사람들은 대학원 생활을 보람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이건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의도보다도, 내가 그렇게 했더라면 더 성과도 좋고 즐거웠을 것 같다는 반성 또는 소회의 글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결과보다도 연구 과정을 좋아하는 사람
대학원은 연구하는 곳이다. 목적에 따라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 등 다양한 종류의 대학원 과정이 개설되어 있지만, 어쨌든 Graduate School 로 분류되는 모든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이수하여야 하는 과정은 연구이다. 연구란, 세상에 없던 지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알고 있는 지식들을 엮어서, 실험과 조사를 거쳐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과정.
뉴스에 나오는 연구자들은 화려하다. 세계 최초로 무엇을 개발했다, 경제적 부가가치가 어마어마하다, 세계적인 학술지 Nature 나 Science 에 실렸다 등등....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학위 과정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아마 그런 꿈을 품고 있을 것이다. 나도 대학원에 왔으니, 좋은 논문 많이 쓰고 컨퍼런스에 가서 발표도 많이 하고, 그렇게 해서 유명한 학자가 되어 교수가 되어야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연구원 생활
본질적으로 "없던 지식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연구는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노력을 쏟는 행위이다. 수없이 많은 실패를 반복하고 반복하면서 하나의 가능성을 보고 거기에 모든 기대를 거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실험 결과는 실망스럽다. 그 다음 실험 결과도 실망스러울 것이다. 그럴 줄 알면서 거기에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은, "하면 된다"라는 신념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자조적으로, 연구원들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있다. "하면 된다"를 패러디해서, "되면 한다."
시간, 그리고 조급함과의 싸움
시간이 무한정 많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하지만 학위 과정생들에게 시간이 많은 건 아니다. 짧게는, 다음 랩미팅 때까지 결과가 안 나오면 무슨 얘기를 하지? 지도교수와의 미팅 때 결과가 없으면 혼날텐데 따위의 촉박함. 좀더 길게는, 얼른 결과가 나와야 논문도 쓰고, 졸업도 하고, 취직도 할 것 아닌가? 그래야 결혼도 하고 자리도 잡을 텐데 하는 초조함.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이는 점점 먹어 가고, 연구는 원래 장거리 마라톤이라고 하지만, 인생의 스케줄이라는 게 그렇게 길지만은 않다는 걸 생각하면.... 시간이 갈수록 시간에 쫓기는 초조함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실험 결과 뿐 아니다. 논문을 퍼블리시 해야 졸업할 수가 있는데, 투고를 하고 나면 몇 주간의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승인 거절이 된다. 운좋게 Peer Review 까지 가도, Review Letter 에 대답하기 위해 추가 실험을 하고, 밤새워 Response Letter 를 쓰고 또 몇 주를 기다린다. Peer Review 가 두세 차례 더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논문 한 편을 쓰기 위해 실험하는 데 몇 달, 논문을 쓰는데 한두 달, 그리고 승인 절차까지 또 한두 달. 그리고 Reject 되면 다시 또 수정해서 투고하는 과정. 멘탈이 어지간히 강하지 않으면, "내가 연구자로서의 자질이 있는 것일까?"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화려한 연구 성과와 함께 학위를 받기는커녕, 졸업이나 제 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빠진다.
너무 심각하지 말아야 한다
함께 학위 생활을 했던 후배나 동료 중에서, 그래도 즐겁게 연구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너무 멀리 내다보는 것 같지 않았다. 그냥 연구하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자기 아이디어에 스스로 매혹되는 경향이 있었다. "야야, 이거 들어봐. 대단하지 않냐?" 그러면 주위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거 이미 있잖아." 연구의 본질은 "새로워야 한다"인데, 이미 있다니. 그건 상처되는 말이다. 선행연구 서치가 부족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연구가치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아 그래? ^^" 그러면서 선행 연구와의 차별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온갖 논리를 짜낸다.
차별성은 여러 곳에서 발현될 수 있다. 같은 현상도 원리가 다르다는 걸 밝힐 수 있다. 원리가 같아도 응용처가 다르다는 논리도 차별화의 한 종류이다. 그런 걸 개발하는 과정을 굉장히 즐긴다. 자기 아이디어에 감탄하고, 작은 실험 결과도 감탄한다. "야, 이거봐, 봤지! 봤지!" .
물론 사람이니까, 실험이 잘 안되면 짜증을 낸다. 담배 한대 피우면서 욕도 한다. 그래도 자기를 믿는다. 그런 자신감의 원천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는데, 연구를 놀이처럼 생각한다. 연구가 어떻게 놀이가 될 수 있겠는가. 인생을 걸고 하는건데. 그래도, 너무 심각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너무 심각하지 않으니, 실험이 잘 안 돼도 생각을 바꿔서 또 해 볼 에너지가 있을 것이다. 끝내 결과가 안 나와도, 그동안 알아낸 것들을 조합해서 또 다른 방향으로 응용해 본다. 그 동료의 연구 분야는 바이오 쪽이었는데, 처음부터 그 쪽으로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테크 써치를 계속 하면서, 그리고 주위의 의견을 수렴해 가면서 응용 분야를 넓혀 가다 보니 그 쪽이 잘 된 것이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 아닐까? 즐기지 않으면 좋은 성과가 나오기 힘들다. 성과는 나중 문제고, 일단 과정이 행복한 것이 우선 아닐까? 연구도, 결혼도, 취직도, 결국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캄캄한 연구과정이 즐겁지 않다면 대학원에 갈 필요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스타일이라면 학위 과정을 재고해 보아야 한다. 회사도 사업도 스트레스 받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회사는 업무가 비교적 명확히 정의되어 있고, 업무의 순환주기가 짧은 편이다. 연구는, 누구도 지시하거나 이끌어줄 수 없다. 심지어 교수도. 그렇기에 교수는 Boss 가 아니라 Advisor 이다. 몇 년간, 어찌될지 모르는 테마에 자기자신을 맡겨도, 거기에 인생과 삶의 가치가 걸린 것처럼 스트레스 받고 목매는 사람이라면, 견디기가 힘들거나 또는 행복하게 연구하기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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