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view>
그 동안 읽어온 책들은 실용서 위주였다. 자기계발서나 투자서적, 독서법, 그리고 성공학 분야에 치중되어 있었다. 그 책들은 독서력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되었고, 지식을 쌓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김병완 작가님의 책으로부터 독서의 목적이 단지 지식습득이 아니라, 인격수양과 의식 확장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좀더 깊은 내용의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좀더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담은 책들 (예를 들어,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지적자본론,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들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 등) 쪽으로 관심의 범위가 넓혀진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고전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나름 자칭 독서가라면 철학이나 인문 분야의 고전들을 읽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부터였다. “읽어야 해서” 읽는 것은 사실 지속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고전이 좋다고들 하는데 뭐가 그렇게 좋은 것인지, 고전을 읽음으로써 나에게 어떤 유익이 올 수 있는지, 좀더 욕심을 부려 보자면 어려운 고전을 어떻게 하면 잘 읽을 수 있는지 등을 누군가 알려 준다면, 고전의 세계에 좀더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김병완 작가님의 또 다른 저작인 “기적의 고전 독서법”은 그렇게 해서 읽게 되었다. 많이 어렵지는 않아서, 빠르게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지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고전을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모처럼 “논어”부터 시작하기로.
나는 고전을 알지 못하는, 이른바 “고알못”이다. 하지만 종교 경전으로서의 “성경”은 못해도 스무 번은 족히 읽었을 것이다. 성경은 인문학 중의 인문학이고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측면에서, 나도 완전한 “고알못”은 아니지 않을까. 성경을 여러 번 읽으면서 나는 독자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게 되었다. 세상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가치관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선과 악에 관해서, 내세에 관해서, 삶의 원칙에 대해서 나만의 관점과 줏대를 가지게 되었다고 할까. 이제 종교 경전으로서 성경에 갇히기보다는, 세상을 보는 좀더 다양한 관점과 유연한 프레임을 가지기 위해서 고전의 세계에 도전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구절들>
고전은 읽는 이들의 사고방식과 사고의 질을 달라지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고전을 읽으면 사고력이 향상된다. 고전을 그저 교양이나 쌓고, 성공하고 출세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게 되면, 이러한 고전의 남다른 힘을 맛볼 수 없다.... 고전은 정답이 없기 때문에 주된 내용이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하고 또 생각하도록 만든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의 목적은, 좀 더 많은 지식을 갖추어서 똑똑해지고, 그로부터 성공의 배경을 쌓기 위해서였다. 요즘의 생각은 약간 바뀌었다. 책을 읽음으로써 통찰력과 사고력을 더 키우고, 생각의 힘을 더 키우기 위해서라고나 할까.
성경을 읽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비유들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모든 것이 완벽했던 욥이 폭삭 망하는 장면, 항의하는 욥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네가 뭔데 그렇게 잘났냐?”였는데, 이 장면은 대표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신약 성서에 보면 주인에게서 해고당할 위기에 처한 관리인이, 자기 마음대로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다가 채무를 감면해 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함으로써 “잘리고 난 뒤”자기를 거둬줄 곳을 찾기 위해서였는데, 놀라운 것은 주인이 이 사람을 지혜롭다고 칭찬했다는 것이다. 이런 장면은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정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주석가들이나 성서 해석자들이 나름대로 “모범답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얄팍할 때가 많다. 어쨌든 나는 나만의 관점에서 이런 난해한 부분들을 해석할 수 있었고, 나만의 개똥철학일지라도 나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사고력이 향상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전을 읽음으로써 사고방식과 사고의 질, 그리고 사고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고전을 읽을 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
... 그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대화는 사람의 사고력과 지혜를 가장 효과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대화는 생각과 생각을 교차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세계는 1+1=2 이지만, 정신과 사고의 세계에서는 1+1이 3도 될 수 있고 10도 될 수 있는 것 같다. 지난 번에 썼던 “1등의 독서법” 독서후기에서도 비슷한 언급을 했지만, 책을 많이 읽음으로써 지식과 지식 사이에 새로운 연결이 형성되는 그 자체가 사고의 확장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세 개의 점을 연결하는 길의 가짓수는 3가지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거기 점이 하나만 추가되어도 점끼리 연결할 수 있는 길은 여섯 개로 늘어난다. 점이 또 하나 추가되면 10가지, 하나 더 추가 되면 15가지의 연결의 개수가 생긴다. 생각과 생각을 교환하는 것이 단지 새로운 생각을 하나 더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연결을 새로이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보면, 위대한 천재들과의 대화인 고전 독서가 사람을 더 총명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시간이 없을 때는 책 대신 노트만 본다. 노트가 결국 책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트에는 수많은 책들의 핵심과 요약이 들어 있기 때문에 10분 만에 10권의 책을 읽은 효과를 얻게 해 준다... 서툴지만 계속해서 노트를 하는 사람들은 결국 총명해지고, 천재로 도약하게 된다.
붓을 들지 않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라고 말한 모택동처럼, 독서 노트 작성에 심혈을 기울여야겠다. 그로 인해서 속도는 다소 줄어들겠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독서의 본질은 많은 양을 읽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것이라는 측면에서.. 생각을 통해 연결을 만들고 똑똑해지는 것을 생각해 보면, 속도보다는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잘 정리된 독서 노트가 쌓여 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 자체도 즐거움이 아닐까.
고전과 고전이 서로 싸우게 하여 새로운 이치와 견해와 사상과 의식을 창출해 내는 방법... 여러 권의 고전을 동시에 읽게 되면 생각지도 못한 여러 가지 유익한 점이 발생한다. 일단 사고가 매우 활발해진다. 여러 가지 주제의 내용이 입력이 되기 때문에 사고는 매우 통합적이고 입체적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세상을 내다보는 시각이 매우 넓어진다.
고전과 고전이 서로 싸우게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성경에서도 기록자간의 충돌이 일어나는 부분이 있다. 그들이 만나서 논쟁한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바울 서신서를 보면 내세의 구원이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지만, 야고보는 “행위로 증명되지 못하면 믿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해묵은 교리 논쟁을 유발시키는 주제이지만, 그건 교리학자들에게 맡겨둘 일이다. 나는 그냥 평신도기 대문에 그 두 가지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가르침을 통해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찬스를 얻으면 만족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통합적이고도 입체적인 사고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서로 상충되는 다양한 고전을 읽는 것이 유익한 것 같다.
<Action Item>
1. 고전을 읽어 보아야겠다. 원전을 먼저 수십 차례 읽어 보겠다. 독서백편의자현이라 했겠다... 생각하면서.
2. 그 다음에는 해석을 도와주는 주석서들과 온라인 강의의 도움을 받아 보아야겠다. 한 고전에서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 그런 여러 해석을 들어 보는 것도 사고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 같다.
3. 독서 노트를 꼭 작성하도록 하자... 독서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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