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view>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떤 책에서 이 책을 인용한 구절을 보고 관심이 생겨 읽게 되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가치관의 전환을 시도할 수 있게 도와준 책이라고나 할까. 이 책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믿어 온 “행복하기 위한 조건들”을 한번쯤 뒤집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준다. 좋은 차, 좋은 집, 넘치는 통장 잔고가 있으면 행복한 것일까? 부자가 되면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정신적인 풍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저자 알렉산더 그린은, 그의 이력은 이런 말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는 경제 전문가이다. “국민적 투자 멘토”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가장 돈에 밝은 사람이, 그리고 경제와 재테크와 투자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이른바 “영적인 부요함”에 대해 책을 썼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가장 세속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쓴 책이어서 그만큼 더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철저히 물질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 왔다. 나는 주머니가 빈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리고 다른 사람도 힘들게 만드는지 잘 안다. 그래서 더더욱 부자가 되기 위해 애써 왔다. 더 좋은 아파트, 더 많은 돈을 가지기 위해서 주식, 부동산, 재테크에 푹 빠져 지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뚜렷한 성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물질적인 부유함은 나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여러 책을 읽다 보니, 그런 가치관이 조금씩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좀더 나은 투자 수익률, 좀더 좋은 투자 상품을 추구하는 것에 피로감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들어서는 인문학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정신적인 풍요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철저히 실용서 위주였던 독서 목록이, 조금씩 추상적인 주제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가치관의 전환에 조금 더 가속도를 내게 해 주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꼭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진짜 행복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인 것 같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감동받는 것, 좋은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치고 감동받는 것,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커피나 와인의 독특한 맛을 느껴 보는 것, 과거에 좋았던 기억들을 되짚어 보는 것, 추억을 담은 사진을 꺼내서 감상에 젖어 보는 것. 그런 것들이 진짜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행복은 “좋은 기분”과 “충족감”으로부터 오는 것이니까. 그런 것들은 사실 대단한 것을 이루어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닌데.
필요한 것은 많은 돈이 아닌 것 같다. 그냥, 몇 가지 도구를 좀더 갖추면, 그만큼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지는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감동받을 수 있는 귀, 위대한 조각품을 보면서 감탄할 수 있는 심미안, 서로 다른 종류의 초콜릿을 구별할 수 있는 미각, 그림이든 악기 연주든, 관심 있는 분야에서의 적당한 취미 생활 (필요하다면 그런 것들을 누릴 수 있을 정도의 기초적인 실력) 등등. 그 정도만 있으면 삶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끔 아내의 카카오스토리나 내 사진첩에 들어가서, 딸아이의 사진을 본다. 이럴 때도 있었구나, 아이구 귀여워 하면서 하나하나 넘기다 보면, 어느 새 입이 귀에 걸려 있다. 이럴 때 행복하다. 가끔 작년에 썼던 일기장을 보면서 아내와 어디 놀러갔었지, 무얼 먹었었지 하는 생각을 하며 추억에 젖는다. 그러면 가슴이 꽉 차는 게 느껴진다. 그럴 때 행복하다. 당장 돈이 많지 않아도, 그냥 그런 대로 행복하게 느껴지다. 왜 나는 애써 아등바등 돈을 모으려, 더 벌려 하는 것일까.
돈도 돈대로 모으고 나름 저축도 열심히 해야겠다. 하지만, 클래식을 더 많이 듣고, 소설책을 더 많이 읽고, 적당히 취미로 즐길 수 있게 수채화를 배우고, 가족과 더 많이 놀러 다니고, 더 많이 산책해야겠다. 돈을 쌓는 만큼 추억도 쌓아야겠다. 언젠가 혹시 많이 힘들어지게 되면, 그런 추억들이 나를 다시 일으켜줄 지지대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돈을 저축하는 데 신경쓰는 만큼, 추억도 열심히 저축해야겠다. 삶을 다양한 방면에서 즐길 수 있도록 몇몇 도구들을 저축해 놓아야겠다.
<기억에 남는 구절>
그들(미국의 백만장자들)에게서 가장 크게 발견되는 공통점을 정리한 것은 다음과 같다. 40만 달러 이하의 집에서 거주한다. 별장, 혹은 살고 있는 집 이외의 집이 없다.. 결코 400달러 이상 나가는 양복을 구입하지 않는다. (중략) 그럼 도대체 누가 그 많은 벤츠 오픈카를 사고,루이비통 지갑을 싹쓸이하고, 한 병에 60달러짜리 그레이구스(보드카)를 마신단 말인가? 스탠리 박사에 따르면 바로 ‘꿈속의 백만장자들’이 그렇게 한다. 부자인 척 행세하고, 부자가 되길 열망하지만 정작 부자가 아닌 사람들 말이다.
헐 정말?!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구나. 결국 겉으로 부자처럼 보이는 것과 진짜 부자인 것은 다른 것 이었구나.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 애쓴다는 게 참 피곤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진짜 부자가 되는 것을 오히려 가로막는 게 아닌가 싶다. 겉으로 부자처럼 보이지만 부자가 아닌 삶이 더 나은 것인지, 아니면 겉으로는 소박하지만 실제로 부자인 삶이 더 나은 것인지 잘 생각해 보아야겠다. 내가 살고 있는 곳만 봐도.. 한 채에 1억5천도 안 하는 25평짜리 단일평수 단지에, BMW, 아우디, 심지어는 람보르기니도 있다. 25평 산다고 좋은 차 타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사실 그 차주들의 주머니에는 억만금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정말 억만금이 들어 있다면 걸어서 할인마트도 가기 어려운 이런 외진 곳에 살지는 않을 것 같다. 벤츠 타고 다닌다고 너무 많이 부러워하지 말아야겠다. 그가 부자라는 직접증거가 안 될 테니까..
독서에 몰입하게 되면 새로운 아이디어들의 조합이 이루어지고, 영감이 떠오르고, 그 영감들이 때때로 현실화된다. 또한 생각들이 가지를 뻗고, 언어들이 자라나고, 의식이 깊어진다. 이런 충만한 독서는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좀더 세련되게 다듬어준다. 또한 형이상학적인 것을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책 밖의 현실적 삶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 독서를 제시한다. 독서에 관한 내 생각을 정말 정확하게 잘 표현해 주었다. 이런 글귀를 만나면, 마치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난 느낌이다. 책 한 권으로도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 마치 내가 꽤 교양인이 된 것 같은 자뻑도 할 수 있다. 허세를 부리고 싶다면, 전철에 서서 책 한 권 들고 읽고 있으면 나름 꽤 허세도 부릴 수 있다. 벤츠 살 돈의 1만분의 1로도 이런 허세를 부릴 수 있으면, 허세 수익률은 꽤 괜찮은 것 같다. ^^ 그걸로 의식을 넓히고, 실제 삶도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데 훨씬 더 나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하지만 팝과 록이 개인적 취향의 차이일 뿐 클래식과 동등한 음악이라는 견해에는 찬성할 수 없다.... (중략) 예술의 세계에서는 차별적인 판단이 가능하고, 그 가치에 따른 서열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그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아, 이렇게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니, 저자의 용기가 대단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정말? 그렇다면 흠...” 하는 생각도 든다. 책도 실용서보다 인문 고전이 더 많은 가치를 담고 있다면, 클래식도 아마 같은 이치로 더 많은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유익함도 비슷한 것일까? 나는 아직 클래식 음악을 듣고 감동받기 어려운, 이른바 “막귀”이다. 하지만 이 구절을 읽으니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배워보고, 귀를 훈련시켜 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갈릴레오는 와인을 이렇게 정의했다. “액체 속에 녹아든 태양”. (중략) 오마르 카임은 “가엾은 포도주 상인들! 그들이 파는 것만큼 가치 있는 물건이 없으니 그들은 도대체 뭘 산단 말인가”라고 탄식했다.
그러니까. 와인 하나를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미각만 있어도, 다른 것들이 필요치 않을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거 아닌가. 진짜 행복해지려면, 더 돈벌고, 더 출세하고, 더 좋은 집, 좋은 차 사려고 애쓰기보다, 이런 걸 즐길 줄 아는 감각을 기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와인은 다 쓰다. 가끔 스파클링 스위트 와인 (모스카토 다스티 같은거) 이나 한잔 마실까 하는 정도. 근데 와인 좋아하는 사람들 보니까 정말 해박하긴 하더군..
불교는 2,5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동양 종교이다. 그것은 철학이며 도덕률이고, 삶의 방식이다. 달라이 라마는 불교가 마음의 과학이라고 말했다. (중략) 불교는 우리에게 욕망의 본질을 이해하고 더 성숙한 삶의 기술을 연마하라고 북돋운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습관적인 충동에 휘말리게 되고, 경박하고 품위 없는 곳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불교의 가르침에 깊이 공감한다. 결정적으로 내세의 구원과 관련된 부분에서 견해를 달리 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이 땅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마음가짐과 삶의 방식에 있어서, 기독교나 불교가 서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 이 땅에 많은 크리스찬들은,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고,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 여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이 좀더 신실하고 진지하게 사유할 줄 아는 크리스찬이라면, 불교에 대해서 그렇게 배타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스님들이 중생들을 위해 쓴 책들을 읽다 보면 참 많은 가르침을 얻게 된다.
<Closing>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책이다. 그리고, 새로운 여러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참 유익했다. 나도 클래식 음악에 감동할 수 있는 귀를 키우고, 와인을 맛볼 수 있는 미각을 키워야겠다. 지금 이 순간,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게 추억을 저축해야겠다. 그리고 좀더 풍요로운 정신적 삶을 누리기 위한 도구들을 잘 계발해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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