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미친 남자.
김병완 작가는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다. 그는 삼성전자 출신이다. 그것도 제일 잘나가는 무선사업부에서 근무했다. 무려 11년이나 말이다. 어느 날 떨어져 뒹구는 낙엽에서 자기의 인생을 보았다고 한다. 덧없음을 느끼고, 한없는 갈증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사표를 썼다. 3년간 책에 미쳤고, 인생의 반전을 만났다고 한다. 그는 왜 책에 미쳤을까. 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 보낸 3년 동안, 그는 무엇을 얻었을까, 왜 그 시간을 기적이라고 표현했을까. 이 책은 그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다. 책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기에, 이 책광(冊狂)선생은 독서를 부르짖는 것일까. 그가 도서관에서 얻은 것이 대체 무엇이기에, 도서관을 이리도 예찬하는 것일까.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잔소리를 듣는다. 책 좀 읽으라고. 쏟아져 나오는 독서법 책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책을 읽지 않는 우리들을 질타한다. 아직도 안 읽느냐고. 읽으면 좋겠지. 안 읽는 것보단 낫겠지. 뭔가 배우는 게 있겠지. 업무에 도움이 되겠지. 재테크 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 어릴 때 동화책과 위인전을 열심히 읽으면 초등학교 들어가서 공부에 도움이 되겠지, 중고등학생 때 철학책을 읽으면 논술 시험에 도움이 되겠지. 그런 패러다임이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작동한다.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무언가에 써 먹기 위한 독서, 이른바 사심을 가진 독서로는, 책의 참된 가치를 누릴 수 없다고. 책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 혹은 도움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식을 확장하고 인격을 수양하기 위해 읽는 것이라고.
아, 이 무슨 고리타분한 소린가. 이 바쁜 세상에 의식확장과 인격수양이라니. 그래도 책에서 이 정도로 고상하고 우아한 가치를 발견할 수는 있어야 진정한 독서가가 아닐까? 나는 저자가 책의 유익을 의식 확장이라고 말한 대목에서 꽤 멋져 보였다. 의식 확장은, 그냥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뇌의 2차원 평면이 3차원 공간으로 확장하는 것이고, 3차원 공간이 4차원 시공간으로 확장하는 것을 말한다. 나도 이제 100권 남짓 되는 독서량을 가졌지만, 의식과 생각이 넓어짐에 따라,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고,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 때의 즐거움은, 통장에 돈이 많이 쌓일 때, 혹은 가지고 싶은 물건을 가졌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사심 없이 평생 책만 읽다가 죽어도 행복한 인생이라고 하지 않았나 싶다. 정계에서 밀려나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책 읽고 공부하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았던 다산선생처럼 말이다.
우린 그렇게 산다. 조직사회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고, 더 높이 올라가려고, 더 많이 인정받으려고 허덕이며 산다. 좀더 넓은 집에 살려고 무리하게 발버둥친다. 좀더 좋은 학군에 들어가려고, 좀더 좋은 것을 가지려고, 그렇게 애쓰며 산다. 그럴수록 한 걸음 떨어져 좀 다른 차원의 행복과 즐거움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산 선생은, 이렇게 버둥거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 높은 곳에 올라가면 우린 행복하긴 한 것일까?
갑자기 잠언 경구가 생각난다.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그가 길 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가로되,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너희는 들을지어다”
저자의 말을 들어 보자. 진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이렇게 바쁘고, 처절하리만치 치열한 이 시대에, 책은 대체 뭘 줄 거길래 이렇게 읽으라고 잔소리를 하는지, 한 번 들어보자. 삶의 진짜 의미가 뭔지 조금 힌트를 얻고 싶다면, 혹은 책이 뭐길래 이렇게 책 책 하는지 궁금하다면, 이것은 당신을 위한 책이다.
<기억에 남는 구절>
p.100 최고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식이나 능력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의 의식 변화이다. ... 책을 읽으면 능력이나 지식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달라진다.
p.111 나는 인간의 본능 중 하나가 책을 읽어야만 하는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동물들은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먹는 것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무엇인가를 읽어야 하고, 그 읽은 것들을 토대로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독서는 인간의 본능 중 하나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137. 능력의 차이는 5배 이상을 넘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의식의 차이는 500배 이상을 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 바로 그것이 연봉이 1000만원도 안 되는 사람과 1000억원이 넘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함께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p.140. 3년 동안 수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의식 각각이 작은 의식 덩어리인 책 한 권 한 권과 조우하고 통합되고 융합되었다.
'데이빗의 독서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후기 : 반응하지 않는 연습 (0) | 2016.10.12 |
---|---|
독서후기 :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1) | 2016.10.12 |
독서후기 :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0) | 2016.09.27 |
독서후기 : 기적의 고전 독서법 (2) | 2016.09.24 |
독서후기 : 1등의 독서법 (0) | 2016.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