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 더버빌 가의 테스
토마스 하디의 유명한 소설이다. 후기 쓰려고 인터넷 뒤져 보니 영국 BBC에서 드라마로도 방영했었다고 한다. 중학생 때 아버지께서 사다 주신 몇 권의 세계문학 소설 중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세계문학전집 독파라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첫 관문으로서 비교적 쉽게 읽혔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테스 더비필드의 아버지는 어느 날, 자기가 “더버빌”이라는 성을 쓰는 유력한 명문가의 몰락한 후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기울어가는 가세에 보탬을 할 요량으로, 맏딸 테스를 이웃 마을에 있는 부잣집 친척 (사실은 돈으로 명문가의 성을 산) 집에 하녀로 보내게 된다. 그 집의 양아치 아들 알렉 더버빌은 테스를 쫓아다니다가 끝내 강간을 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도저히 결혼할 수 없었던 테스는 상처를 입은 채 집으로 돌아와 미혼모가 되고, 그나마 낳은 아이마저 병으로 잃는다.
어떻든 살아가야 했기에 다른 마을로 일하러 떠난 테스는, 새로 잡은 젖소목장에서 에인절 클레어를 만난다. 전도유망한 목사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교리와 교회 체제에 부조리를 느끼는, “나름”진보적인 마인드로 무장한 그는 테스에게 열렬한 구애를 한다. 테스는 자기의 과거를 말할 기회를 놓치고 결국 둘은 결혼한다. 신혼 초야, 과거의 잘못을 하나씩 고백하기로 하고 어렵사리 과거를 고백한 테스를, 에인절은 매정하게 떠나 버린다. 또 상처를 입고 (그래도 에인절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한다... 테스는 그것이 자기 잘못이라고 여기고 있다!) 극도의 곤궁에 허덕이던 테스는, 다시 찾아온 알렉 더버빌과 같이 살게 된다.
사랑얘기는 영화고 소설이고 이렇게 어긋난 타이밍을 만드는 게 룰인가보다. 에인절은 한 발 늦었다. 테스가 알렉과 같이 도시로 떠나고 나서야 찾아온 것. 테스는 결국 알렉을 죽이고 에인절을 따라나선다. 얼마 안 가 테스는 잡히고, 교수형을 당한다. 아니 근데, 에인절이 처제와 다시 새출발을 한다는 마지막 장면이 의미하는 바가 무얼까???
한 번 읽은 소설이지만 다시 읽으니 새롭다. 아마 이 소설을 한번씩 읽고 나면, 알렉이 나쁘냐 에인절이 나쁘냐 하는 생각을 한번씩 해보지 않을까 싶다. 어려서 읽었을 때는 테스의 인생을 망쳐버린 알렉 더버빌이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에인절이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인물이 아닌가 싶다. 진보적인 척 지식인인 티는 다 낸다. “나는 구세대의 통념을 따르지 않는다” 이거다. 그래서 목사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그냥 목사가 되지는 않겠다는 거다.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흙을 파먹고 사는 가난한 처녀를 사랑할 만큼 자기는 깨어 있다는 건데.... 그런데, 그의 이런 태도가 소위 사상적 허영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결혼도장을 찍고 나서 극명히 드러난다. 어떤 과거라도 다 용서하겠다고 하고도, 미혼모인 과거를 용서하지 못한다. 테스가 더러웠다고 여겼는지, 테스의 잘못이 아닌 과거임에도 그걸 죄라고 여겼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나서 테스를 다시 찾아온 것은 뭔가. 하기야 그건 에인절의 잘못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알렉과 살고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
알렉은 테스를 강간했지만, (이 놈 또한 양아치다) 테스만 허락했다면 끝까지 책임질 용의가 있었던 것 같다. 작가는 알렉을 여전히 기분나쁜 웃음을 흘리는 나쁜 놈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의 행동만으로 보면 그는 최소한 에인절만큼 야비하거나 더러운 인물은 아닌 것 같다. 테스야, 조금만 마음을 너그럽게 먹고 알렉이랑 살지 그랬니. 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
테스는 이상을 좇았다. 사람이 너무 이상을 좇고만 살면 불행하게 되는 거 같다. 이상적인 남자를 만났고, (최소한 이 어처구니가 테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보다. 너무 순진함. 하기야 나도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속았다.) 이상적으로 양심을 따르고 싶었다. 타이밍을 놓쳤다. 조금만 더 일찍 양심선언을 하지 그랬냐..
페미니즘적인 시각에서 보면 당하고만 사는 테스를 너무 수동적으로 그린 거 아니냐는 의견도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시대가 그래서 여자에게는 우울했겠지만, 그래도 테스는 자기 자존심은 지키면서 살았다. 테스의 행동이 “지혜로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는 깨끗하게 살았다.
에인절 클레어를 기다리다 지쳐서 그에게 보낸 테스의 원망 섞인 편지. “지체 없이” (시댁인) 목사관으로 배달되었다는 저자의 서술은, 테스의 절박함과 원망 섞인 단호함을 느끼게 한다. 내 생각엔, 이 소설에서 가장 공들여, 가장 천천히, 가장 공감하며 읽어야 할 대목이다. 그냥 자기를 힘들게 만든 남편이 원망스러워서가 아니라, 비참한 현실이 남편에 대한 지조를 흔들 지경에 이르렀을 때의 절망이 담겨 있기 때문.
“오 에인절, 왜 나한테 이렇게 심하게 구나요! 이런 꼴을 당해야 할 정도로 잘못하지는 않았어요. 모든 일을 곰곰이 따져보았어요. 난 당신을 절대로, 절대로 용서 못 해요! 고의로 당신에게 상처를 입힌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 왜 내게 이런 상처를 주나요? 당신은 잔인해요, 정말 잔인해요! 당신을 잊으려고 노력할 거예요. 당신에게서 받은 것은 부당한 대우뿐이에요!”
남편에게 그리도 부당하게 대우를 받았건만 주인공 여자사람은 남편에게 누가 될까봐 클레어라는 성을 쓰지도 못한다. 마땅히 누려야 할 대우를 포기하고, 마땅히 받지 말았어야 할 대우를 받는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끼게 한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몽유증세가 있는 클레어가 아내의 과거 고백을 듣고 나서 그녀를 안고 공동묘지의 빈 석관에 눕히는 대목이었다. 클레어가 여전히 테스를 사랑했다는 표현이어서가 아니다. 거기서 돌아오는 길, 테스가 클레어를 데리고 돌아온다. 수동적이기만 했던 테스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유일한 장면이었기 때문에.
작가는 뭘 말하려고 했을까? 남자들의 이중성, 아니면 엄격한 전통과 체제에 묶여 있는 사회에 대한 비판? 양심과 이상을 지키며 사는 삶의 고결함? 아니면 허무함?
예전에는 문학작품을 읽으면 그냥 줄거리 파악하고 재미있다 없다 정도로 매듭짓고 덮어버렸다. 지금은 소설의 여운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나보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준다. 소설은 “가공의 이야기”를 통한 하나의 철학책인 것 같다. 세계문학전집 하나 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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