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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의 독서노트

독서후기 : 선비들의 평생 공부법

by 데이빗_ 2016.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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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선비들의 평생 공부법

● Overview


좋은 책이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자기계발서는 아니지만, 학문과 업무에 임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을 다잡게 해 주었다. 공부와 독서가 가져다 주는 유익과 즐거움을 뒤늦게 깨닫게 되어 진짜 공부의 길이 무엇인지에 관한 고민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서 어떤 태도로 공부에 임해야 하겠는지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나는 왜 평생 공부하고 독서하려고 하는가? 그 동안에는 실생활에 당장 유용하게 써먹기 위한 "실용 독서"에 치우쳐 있었다면, 이제는 책을 읽고 의식과 지성을 확장해 가는 즐거움 자체에 집중하게 된 것 같다. 지금까지는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논문을 쓰기 위해, 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를 했다. 본디 평가는 제대로 공부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실시하는 학습의 보조 수단이 되어야 하겠건만, 내 학창시절이 공부는 평가를 준비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있었다. 그런 것들을 제대로 된 공부라 말할 수 있었을까? 그런 학습이 지성을 확장시키고 의식을 더 깊게 만들 수 있었을까? 그렇게 공부했던 시간이, 진리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줄 수 있었을까? 진정한 정신적 풍요를 줄 수 있었을까?

정규 교육과정을 소화하는 학생들에게, 혹은 학부모에게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깊은 공부와 독서"를 이야기하면, 당장 현실적인 반박을 할 것이 뻔하다. "시험도 봐야 하고, 진학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다가 성적 떨어지면 인생 책임질 거냐" 라고 말이다. 맞다. 이 시대의 공부는 입시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진실된 고백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선생들은,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만 충실히 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강조하는 주요 메시지가 더 깊이 와 닿는다. 이 책에서는 성현들의 가르침을 빌어 이렇게 강조한다. 진짜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출세와 사리를 추구하는 자기의 욕심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이다. 실제로 깊은 학문을 추구했던 조선의 사상가들 중에는, 높은 관직을 미련 없이 버리고 낙향한 분들도 있고, 조정에서 수 차례 관직을 하사해도 마다했던 사람들도 많이 있다. 요즘도, 시험과 진학에 연연하지 않고 그야말로 자기 페이스대로, 자기만의 뜻을 세우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을 찾아 볼 수 있을까. 아니, 당장 나부터, 입신양명과 출세를 다 버리고서라도 독서와 공부에 매진하는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을까.

다산 정약용은 18년간 유배지에 있었지만 그의 의식은 현실에 매몰되지 않았다. 그는 좌절하거나 현실을 탓하면서 허송 세월을 보내지 않았다. 출세에 연연하지 않고 "진짜 공부"에 정진함으로 의식이 깊어져서 역경에 대한 내성이 생긴 것일 수도 있고, 처음부터 출세에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정계에서 축출되어도 그다지 마음쓰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오늘날의 학업풍조가 인격수양과 의식확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입시에 실패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방탕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공부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무언가 배워 간다는 즐거움,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정신적인 만족, 그리고 자기 손으로 통제할 수 없는 역경을 이겨내는 내적인 저력을 갖추는 것이 아닐까. 물론 자연히 능력이 계발되고 지식도 쌓여서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재도 되겠지만, 그것만을 추구하는 공부는 어떤 의미에서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제대로 공부하려면" 뒤쳐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문제는, "뒤쳐짐"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어야 진짜 공부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는 건데, 그럴 수 있느냐는 것.

나 자신의 공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지만, 우리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입시에 연연하지 않고 인격 수양을 위해서 공부해라 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세상세태에 맞서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부모일까. 아이가 학문을 하든 예술을 하든, 남의 평가와 세상의 이목에 신경쓰지 말고 오로지 너의 내면과 의식과 인격의 도야에만 집중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깊이 생각할 거리를 안겨 주었다.

​● 기억에 남는 구절

​​공부를 출세의 수단으로만 여긴다면 공부와 나 둘 다 잃는다... 책을 읽으며 쓸 수 있는 지식을 구하는 것은 모두 사심에서 비롯된 것인데, 하루를 마칠 때까지 책을 읽어도 학문에 진보가 없다면 사의(私意)가 학문을 해치기 때문이다.

- 오늘날의 정규교육과정이 깊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인 것 같다. 입시를 위한 공부,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면 사의가 학문을 해친다. 중고등학생이 배우는 공부가 “학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냥, 한낱 테크닉일 따름이다.

​​다산은 숙독해야 할 책은 차분하고 꼼꼼하게 정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강구하고 고찰하여 깨닫고 느낀 점들을 그때그때 기록해야만 한다고 말하였다. 그렇게 기록해야만 자신에게 남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 초서법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나도 읽은 책들은 일단 간단히 블로그에 후기를 남기고, 나아가서 숙독해야 할 책들을 골라 수기로 옮겨 적으면서 내용을 깊이 새겨야겠다.

​​연암에게 있어 글쓰기는 공부의 한 과정이자 공부 그 자체였다... 글은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인데, 생각을 꾸미고 글자마다 고치려고 애쓴다면 화공을 불러 초상화를 그릴 때 용모를 고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 글쓰기는 공부 그 자체이다. 읽기만 하지 말고, 읽은 것을 잘 정리해서 나의 생각으로 만들어 쓰는 연습을 해야 되겠다. 책쓰기도 결국은, 공부의 일환으로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누구를 위해 쓰는 게 아니라, 순전히 나를 위한 공부의 새로운 차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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