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아내가 사 준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처음으로 다 읽은 책이다. 꽤 유명한 소설이었기 때문에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유명해졌을까 싶어서 꺼내 읽어 봤다. 분량이 꽤 되었으므로 끝까지 다 읽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몇 장 읽다가 재미없으면 덮어 버릴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의외로 흡입력이 있고 재미있었다.
내용은 재미난 로맨스 소설이다. 똑똑한 여주인공이 돈 많은 귀족 남자와 결혼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인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꽤 디테일하고 재미있었다. 귀족 계급 남자주인공 다아시의 오만, 그리고 그를 아주 교만하고 못된 남자로 바라봤던 엘리자베스 베넷의 편견, 그래서 작품 이름이 오만과 편견이다. 엘리자베스가 다양한 사람과 엮이면서 벌어지는 각종 에피소드도 재미있었고, 여주와 남주 사이에 오해가 생겼다가 풀리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베넷 씨, 베넷 부인, 그리고 그 다섯 딸들인 제인, 엘리자베스 (여자주인공), 메리, 키티, 리디아, 그리고 그 동네에 이사와서 제인 베넷과 엮이게 된 빙리, 질투심 많은 빙리의 여동생, 그리고 빙리 친구 다아시 (남자주인공), 베넷씨 가족의 먼 친척이자 상속자인 콜린스, 콜린스가 숭배하는 캐서린 여사 (다아시의 이모이기도 하다), 난봉꾼 위컴씨 등등, 정말 다양한 인물이 나온다. 쉽게 구분하자면, 현명한 사람과 멍청한 사람들로 나눌 수 있다. 베넷 부인, 메리, 키티, 리디아, 콜린스 씨, 캐서린 여사 등의 행태와 언행을 보면 사람이 얼마나 멍청하고 우매할 수 있는지 그 극단을 보는 것 같다. 반면 제인, 엘리자베스, 빙리 씨, 다아시 씨 등은 합리적이거나 선한 인물인 것으로 그려진다. 이런 멍청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 혹은 인물의 이런 점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번쯤 해 보는 것만으로도, 고전소설은 유익하고 훌륭한 잠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섣부르게 판단하면 안 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엘리자베스가 위컴 씨와 다아시 씨를 실제와 다르게 오해하는 장면 등을 보면, 아무리 합리적이고 똑똑한 사람도 편견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다소 작위적이긴 했다. 남자주인공이 생각보다 못된 사람이 아니고 꽤 괜찮은 사람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각종 기사도적인 에피소드들을 후반부에 집어넣어서 인물의 이미지 개선에는 성공하긴 했는데, 자연스러운 맛은 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너무 확 틀었다고 해야 할까.
마무리는 좀 서두른 느낌이다. 주인공의 결혼 시점에 맞추어서 모든 인물들의 스토리를 다 클로징 해야 하다 보니 서둘러서 봉합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모두들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끄읏~~!!” 같은 느낌.
문체가 위트있고 유머감각이 넘친다. 부자이지만 어리석은 친척 콜린스 목사에게 시집간 동네언니 샬럿을 방문하려고 여행을 떠나는 엘리자베스, 그리고 허전해할 아버지 미스터 베넷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빵 터졌다.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아버지를 남겨 두고 떠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없으면 아버지는 허전해할 것이 틀림없었지요. 엘리자베스가 가는 것을 아버지가 얼마나 싫어했냐 하면, 딸더러 편지를 쓰라고 했을 뿐 아니라 하마터면 답장하겠다고 약속까지 할 뻔했더랍니다.
철딱서니 막내동생 리디아가 난봉꾼 위컴과 야반도주를 해서 온 집안이 뒤집어진 상황에서, 셋째 딸 메리는 멍청하게도 현학적인 말을 늘어놓는다.
“이번 일이 리디아에게는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겠지만, 우리는 여기서 유익한 교훈을 얻을 수 있어. 여자가 정절을 잃으면 돌이킬 수 없다는 교훈, 여자가 한 번 발을 잘못 내디디면 영원히 파멸이라는 교훈, 여자의 평판은 아름다운 만큼 깨지기 쉽다는 교훈, 여자는 무가치한 남자 앞에서 아무리 행동을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교훈 말이야”
이런 어이없는 메리를 보았나!! 이 여자아이는 책을 많이 읽고 자기계발에 꽤 신경쓰는 숙녀로 묘사되어 있지만, 인격의 그릇은 그것을 다 담아내지 못할 만큼 작아서, 종종 현학적이고, 얄팍한 노래 실력을 내세우고, 어디 책에서 읽은 문구들을 읊어댈 기회를 늘 찾는, 그러니까 결국은 멍청한 헛똑똑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근데 책의 곳곳에서 “여자가 모름지기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인물의 대사를 통해, 그리고 자기의 말로도 종종 언급하고 있다. 요즘 누가 어느 소설에서 “여자는 말이여 어쩌구” 했으면 엄청난 비난을 받았을 텐데, 이 소설은 그런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웠는지 모르겠다.
좀더 고급지고 통찰력 있는 리뷰를 쓰려면 아마 해설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 그러면, 해설을 다시 한 번 읽고 좀더 덧붙여 쓰는 걸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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