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여유(?)를 즐기느라, 영화를 한 편 보았다. 회사 사내방송인가에서 잠깐 리뷰를 했기에 언젠가 봐야지 하다가 못 본 영화인데, 기대 이상의 수작이었다. 극적인 요소가 많지는 않았지만, 잔잔하게 잘 구성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생각해 볼 만한 내용도 많고, 깨달은 내용도 많다.
경험많은 70대 인턴 역으로 나온 배우 "로버트 드 니로". 의 역할과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은퇴하고서 스타트업의 CEO 비서가 된 전직 기업체 중역의 역할에 적절히 잘 맞는 연기를 선사해 주었다. 저렇게 나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역할이 돋보였다. 그는 경험 많은 할아버지였지만 꼰대가 아니었고, 깔끔하고 절제된 자기 관리를 보여주었지만 딱딱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젊은 여성 CEO 의 인턴, 개인비서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인상을 받았다. 40년 비즈니스맨의 경력이고 전직 기업체 중역이면 자기의 주장과 고집이 생길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의 경험과 원숙함은 다른 이들을 깎아내리는 데 쓰이지 않았다. 다른 이들을 세워 주고, 그들을 격려해 주고, 부드럽게 조언해 주는 데 쓰였다. 빵빵한 경력은 교만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겸손함과 온화한 인품으로 드러났다.
나는 저렇게 늙을 수 있을까. 내 성품과 내 마인드는, 내 경력과 내 경험은 다른 이들을 격려하는 데 쓰일까, 자기 과시와 자랑을 하는 데 쓰일까. 주의 깊게 경계하고 스스로를 성찰해야겠다.
인턴 할아버지의 옷장에 깔끔하게 걸려 있는 정장과 넥타이들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자유로움과 분방함이 미덕이자 특징으로 인정받는 이 세대에서도, 단정하고 절제된 옷차림과 품행은 여전히 사람들의 인기를 끌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단정함과 격식과 예의바름이, 자유 분방하고 쿨함과 어우러질 수 있다는 점을 잘 표현해 낸 게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경험많은 할아버지 인턴이 열정만 있고 우왕좌왕하는 젊은 CEO 를 잘 코칭해 준다는 내용이 아닐까 했는데, 전혀. 만약 그렇게 흘러갔다면 이런 수작은 나오지 않았겠지. 내가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 ^^
정신없이 일하느라 개인 시간이 거의 없는 "현역"으로서, 은퇴하고 나서 시간이 너무 남는다는 것이 또 다른 괴로움이라는 것은 아직 잘 와 닿지 않는다. 그저 빨리 돈벌어서 일찍 은퇴하고 싶은 마음뿐. 그러나 인턴 할아버지의 첫 몇 분간 소개하는 자기 일상을 보면서, (겪어보지 못했지만) 은퇴하면 또 저런 어려움도 있겠구나 하고 간접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있다.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겠다. 그리고 전문성과 경력을 쌓을 뿐 아니라, 겸손하고 온화하고 차분하고 절제되고 단정한 인격과 인품을 수양하는 데도 젊은 시간을 십분 활용해야겠다.
잘못 보낸 이메일을 지우려고 CEO의 친정집에 몰래 침투해 들어가는 장면은, 영화가 너무 진부해질까봐 박진감 넘치는 요소를 플러그인같이 하나 넣은 것일까? 깨알같았다.
운전자들이 교차로에서 일단멈춤을 실행하는 장면, 호텔에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건물 밖으로 대피하는 장면은, 실제 미국 사회가 그런지 아니면 영화의 설정인지 모르겠다. 그것이 영화적 설정이라 해도, 한국 영화라면 그런 설정을 하지 않았으리라. 어쩌면 선진국 시민들의 준법의식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닐까.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하와이에 놀러갔을 때, 경적 소리를 한 번도 듣지를 못했다.
인턴 할아버지가 호텔방에서 TV를 보면서 사별한 아내를 생각했는지 눈시울을 적시는 장면은... 뭔가 찡한게 있었다. 나와 아내도, 둘 중 누구는 먼저 가겠지. 남은 사람이 나라면, 나도 저렇게 먼저 간 평생친구, 평생연인을 그리워하겠지.
눈과 마음을 정화한 좋은 영화 한 편. 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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