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타입이다. 종종 협업부서와 미팅하다가 얼굴을 붉힐 일이 생긴다. 논쟁을 하다 보면, 감정이 격해져서 불편한 상황이 종종 있다. 속마음을 보였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프로답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책감도 든다. 앞으로도 계속 얼굴 보고 일해야 할 사이인데, 저 사람이 나에게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래저래 감정 조절은 중요한 것 같다.
크게 폭발하는 경우는 아주 심각한 케이스다. 그렇게 폭발하지 않더라도, 의견이 맞지 않아서 짜증이 나는 경우에 표정에 드러나는 경우는 좀 흔한 케이스다. 짜증이 나는 자체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표정으로 짜증이 표현되는 것은 막는 게 좋다. 상대가 내 감정을 읽어서 불편해질 수도 있고, 나 역시도 속마음을 내보이면 관리 안되는 사람으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표정관리라는 게, 나도 모르게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얼굴 근육을 통제한다는 게 쉽지가 않기는 하다.
코로나사태로 마스크를 쓰는게 일상화되다 보니, 마스크가 의외로 표정관리에 유용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처럼 표정관리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논쟁할 때 마스크를 꼭 챙기시길 권한다. 입꼬리가 내려간다든지, 볼이 떨린다든지, 이를 악문다든지 하는 걸 (막지는 못하더라도) 내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마스크를 썼더니 표정을 감출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심리적인 안정감이 생겼다. 의사표현에서 표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도 절반은 되는 것 같다. 똑같은 질문을 해도, 화난 얼굴로 표현하면 공격의사가 드러난다. 표정 없이 (예를 들면 전화로) 했다면 그냥 질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도, 표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비난이 될 수도 있고, 공격이 될 수도 있고, 방어가 될 수도 있다. 마스크를 쓰고 상대가 내 표정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불가피한 논쟁에도 좀더 편안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의사표현을 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상대의 표정을 다 볼 수가 없으니 상대가 짜증이 났구나 하는 생각에 심리적인 압박을 느낄 일도 줄어든 것 같다. 발표나 의견개진을 하다가 상대를 봤을 때 표정이 영 아니면, 멘탈 관리가 쉽지 않았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대면회의도 많이 줄어들고, 대면회의를 하더라도 마스크를 다 착용하고 있으니 불필요한 감정전달에서 오는 에너지 소모를 많이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이 힘든 거라는 말도 있듯... 상대의 감정 때문에 힘들고, 내 감정 때문에 힘들고... 직장생활에서 마인드 컨트롤이 정말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게 아닐까 싶다.
같은 팀 부장님과 티타임을 하면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렇게 말씀하신다.
"눈에서 불 나오는건 어떻게 하지?"
그건 아직 좀 더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표정의 절반은 눈빛인데, 눈에서 레이저 나오는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보아야겠다. ^^ 선글라스를 쓰고 논쟁을 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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