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제가 일전에 두 개의 포스팅을 올리면서, 회사에서 “나쁜 선배 되지 않는 방법”에 대해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제가 후배들을 너무 드라이하게 대한다는 인상을 풍긴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좀 듭니다. 회사에서 그렇게 끈끈한 관계가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있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습하고 끈적한 것보다는 드라이한 게 더 좋더라구요. 밥도 진밥보단 된밥 좋아하고, 크림빵보다는 바삭하고 드라이한 크래커를 좋아합니다.
함께 일하고 싶은 선배가 되려면
후배들이 공격받을 때 실드를 쳐 주기
제가 후배들을 대할 때 좀 드라이한 편이긴 하지만 제 딴에 나름대로 꼭 지키려는 룰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협업 부서 사람들과 일할 때의 관계에서는 반드시 후배들의 실드를 쳐 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그 후배가 뭔가 실수를 했거나 업무를 잘 처리하지 못해서 협업 부서 사람들에게 항의받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미팅 시간에 이런 일이 발생하면 반드시 제가 대산 나서서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대로 후배들이 부당하게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경우에도, 반드시 제가 함께 디펜스를 해 주고, 경우에 따라선 적극적으로 방어해 주는 역할을 하는 편이에요. 이 역할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좀 진심인 편입니다.
그 후배에 대한 지휘감독 책임이 저에게 있었다면, 그 후임자의 업무 실수는 당연히 제 귀책에 포함되는 것이고, 반대로 그 후배들에게 온당치 않은 공격이 들어온다면 그건 곧 저에 대한 불만의 표시인 것이겠지요. 누구나 한두 번씩은 경험해 보시겠지만, 상대 부서의 주니어 멤버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그를 공격할 때, 그 사람의 사수나 보스를 의식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안 그런 선배도 있나요?
이게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당연한 것처럼 보이고, 때로는 “안 그런 선배도 있나?” 하고 생각할 수 도 있는데... 가끔씩 보면 무책임한 보스나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상사들, 그리고 정치적인 리더들 중에는, 자기의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 후배들이 미팅 시간에 공격을 받고 있거나 곤란한 질문을 받고 있는데도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닏. 그렇게 되면 후배들도 그 선배를 신뢰하지 않게 되겠지요. 그리고 자신있게 발언하고 자기 주장을 펼치는 데도 당연히 상대방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개개인의 업무 역량과 팀의 역량이 감소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후배들이 앞에서 총 맞고 있는데 뒤에서 입 꾹 다물고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선임자들을 보면서, 내가 너무 이상하게 후배들을 과잉 보호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여러 번 고민을 해 보았지만 제 생각은 그래도 선배가 나서서 보호해주는 게 최소한 그 후배에게 면이 서는 일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실드는, 단지 보호자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그런 의미에서, 지휘감독 책임 하에 있는 후배들을 대신 방어해 주고 보호해 주는 것은, 단지 그들을 보호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후배들의 업무에 대해 전후 맥락을 다 파악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고, 상대 부서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줄 것과 받을 것, 우리가 해야 할 일과 상대가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구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누구도 후배들의 눈에 비겁하게 비추어지는 선배가 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상대 부서와 싸움 하기를 좋아하는 호전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어하지도 않지요. 적절한 선을 지키면서 내 지휘하에 있는 주니어 멤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후배들의 업무와 자기 관할 업무에 대해 잘 꿰고 있어야 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것이지요.
그렇다고 제가 모든 후배들 앞에서 대신 다 화살 맞아 주고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요.. ^^ 어느 정도 역량이 되어서 스스로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고, 상대방과 티키타카 할 수 있을 정도의 레벨이 되면, 저는 그 후배가 참석하는 미팅에 굳이 같이 들어가서 배석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신뢰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그렇게 해서도 문제가 되는 일이 발생했다면 사후에라도 제가 나서서 정정해 주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선배로서 맡아 주어야 할 역할 중에서, 보호막으로서의 역할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무슨 보스 의식이나 두목 기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일이 꼬이지 않고 협업이 매끄럽게 잘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면서
회사에서 너무 착하기만 하면, 잡아 먹히기가 딱 좋은 것 같아요. 싸우거나 논쟁 하기 싫어서 지나치게 친절하고, 너무 많이 양보하고, 사과하지 않아도 될 일을 지나치게 사과하다 보면, 호의라고 인식하기 보다는 오히려 당연히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라면, 약간의 이미지 손상을 감수하고서라도 할 말은 하고 주장할 것은 주장하면서 살아야 되겠지요. 주니어 멤버들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면서 살면 되었지만, 직책이 있든 없든 주니어들을 이끌고 일해야 되는 입장에서는, 후배들의 크레딧을 지켜주는 것이 곧 자기의 크레딧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점, 그게 장기적으로 후배들의 역량 (즉, 나와 함께 일할 동료들의역량) 을 키우는 데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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