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2017-22) : 판사 유감


법정 영화나 의학 드라마가 인기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일반인들의 선망을 받는, 그리고 뭔가 우리와는 다를 것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의 삶을 (비록 비현실일지언정)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자기가 겪어 보지 못한 삶을 훔쳐보고 싶은 (혹은 대리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다. 지금 후기를 적고 있는 <판사 유감>, 현잭 판사로 근무하는 한 법조인의 생각과 법원의 생활에 대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었다.

최근 전국의 모든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이라는 칼럼이 큰 히트를 쳤다. 그 칼럼의 저자인 문유석 판사는, 지금 후기를 적는 <판사 유감>을 비롯해, <미스 함무라비>, <개인주의자 선언> 등의 책을 쓰면서 작가로서의 능력도 톡톡히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분의 책을 최근 두루 다 읽어 보고 있는데, 필력과 위트, 그리고 진지한 성찰의 깊이가 돋보이는 좋은 책들이었다.

<판사 유감>은 저자가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린 소소한 글들을 엮은 에세이집이다. ‘소소한 글이라고 표현했지만, 법과 정의, 그리고 사람에 대한 통찰과 깊이 있는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법이 대체 무엇인지, 법대로 하면 다 잘 되는 것인지, 법관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국민들의 법 감정과 법원의 양형이 그렇게 차이가 큰 이유가 무엇인지, 하버드 법학대학원 유학 시기의 경험으로부터, 서울법대와 하버드 로스쿨의 공통점과 차이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을 꼽자면, <징역 1년의 무게>라는 꼭지였다. 사람들의 지탄을 받는 범죄에 대해 징역 1년의 엄벌을 내리면, 사람들은 분노한다. 고작 징역 1년이냐, 평생 콩밥을 먹여야지 등등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이 문제로부터 저자는 엄벌주의와 필벌주의, 그리고 형벌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을 시작한다. 저자는 엄벌주의와 필벌주의는 결코 공짜가 아니고, 범죄를 반드시 적발해서 처벌함으로써 범죄를 완벽히 차단하고자 하는 시도가 사회의 피로감을 증가시킨다는 점을 지적한다. 범죄를 완벽하게 절멸하려는 시도는 가능하지도 않고, 그 비용도 만만치가 않으므로 어차피 범죄는 적절한 수준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형사법의 목적도 결국은 범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적절한 수준으로 낮추어 사회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형벌의 수준도 범죄율의 관리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정도로 족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징역 1을 선고받은 기결수가 겪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전제도 깔고 있다. 정말 현실적인 접근인 것 같다.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라는 국민들의 법 감정은, 나름대로의 도덕적 원칙에 따른 이상적인 사회상이나 혹은 순간적인 감정에 기댄 것일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상은 이상이고 감정은 감정일 뿐, 현실적으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그 과정에서 질문하게 된 것은, “법대로만 하면 다 잘 굴러가는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범죄자들을 그저 엄하게 만 다루면 법이 할 일은 끝나는 것인가,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지라는 원칙만 들이대며 수백만 명의 신용불량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지 않고 몸을 팔고 장기를 팔도록 몰아대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인지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2, <판사, 사람을 배우다>는 조금 덜 심각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판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법원 유머 등, 다양하고 깨알같은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어서,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등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한국 사회의 지나치게 경쟁적인 구조에 대한 고찰도 눈에 띄었는데 아마 법관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모든 구성원이 단일한 지표를 가지고 경쟁하는 일원적 경쟁은 부작용이 더 크다고 봅니다. 모두가 한 가지를 놓고 경쟁하면 승자는 한 명이고 패자는 나머지 전원입니다. 법관들이 경쟁하는 단일 목표가 대법관, 고법부장 등 피라미드식 인사 구조의 정점으로 올라가는 것이라면 극소수의 승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패배자이거나 포기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승자 독식 사회의 필연이죠.

마지막 꼭지, <나는 놀기 위해 태어났다>도 인상적이다. 사회가 정해 준 규칙에 따라, 일에 파묻혀 하루하루 살아면서도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아마 거의 대부분의 직장인의 꿈 아닐까. 판사도 결국 직장인이라는 마지막 문장이 기억에 팍 남는다. 결국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면서도 틀을 벗어날 수 없는 직장인의 숙명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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