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



앞서 후기를 적은 문유석 판사의 또 다른 작품이다. 법관 생활을 하며 직간접적으로 겪은 에피소드들을, 가공의 인물들을 통해 소설로 풀어 냈다. 서울중앙지법 44부라는 가상의 재판부에서 일하는 한세상 부장판사와 임바른, 박차오름 판사 (각 우, 좌배석) 가 겪는 다양한 사건 등을 가지고 현직 법관의 애환이랄까, 그리고 법관 생활, 사회문제 등에 대해 저자의 시각을 보여 주고 있다.

주인공 미스 함무라비는, 신임 법관인 박차오름 판사의 별명이다. 정의의 사도 같은 인물인데, 부조리한 상황을 보면 참지를 못하고 꼭 따져야 성이 풀리고, 불쌍한 사람들한테는 꼭 다가가서 손도 잡아주고 말도 들어줘야 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순수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나이브한 인물이다.

같은 재판부에서 일하는 임바른 판사는 뭔가 모범생 같은 스타일이고, 부장인 한세상 판사는 처음에는 꼰대 아저씨같이 나오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합리적인 인물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성희롱 가해자로 회사에서 해고된 어떤 남자의 해고무효소송을 통해서, 한 가정의 ‘가장’의 밥줄을 끊는 것이 과연 가혹한 일인지 질문을 던지고, 회사에서 가혹행위를 당해 자살시도까지 하게 된 어떤 우울증 피해자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전체주의, 그리고 출세주의 문화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아내의 외도로 이혼소송을 하게 되었는데 ‘자녀의 복지’라는 원칙에 입각해서 양육권마저 빼앗기게 된 남자의 에피소드는, 항상 정의로울 수만은 없는 법의 무력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직장인으로서의 판사 생활에 대한 애환도 그려지고 있다. 성공을 향해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성공충 판사의 이야기, 매일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가 코피를 쏟은 신입 판사 이야기 같은 게 그것이다. 법조계를 바라보는 문제의식도 보여주고 있다. 전관예우에 관한 두어 꼭지 글에서, 과연 전관예우가 있는 게 맞는지, 전관예우를 바라보는 판사들의 시각과 국민들의 시각이 얼마나 다른지 등을 다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그런 걸 느낄 수 있었다. 법에 의해 사건을 정의롭게 판단한다는 기치를 들고 일하지만, 그것만으로 사회정의를 구현해 낼 수는 없는 판사라는 포지션에 대한 한계랄까, 그런 걸 많이 드러내고 있었다.

마지막 꼭지, ‘이제는 신전에서 내려와 광장으로’는, 법관의 역할과 그 한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시민들이 바라는 법관의 모습은 정의를 구현하는 통치자의 역할이랄까, 뭐 그런 것이겠지만, 현실의 법관은 통치자가 아니다. 그들은 법을 따라 판단하고 제도와 법의 한계 내에서 움직이는 판단자일 뿐이다. 그것 때문에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고, 감정적으로는 정의롭지 못함에도 법대로 판결을 내려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가장 안전하고 부작용이 적은 방향으로 진화해 온 제도가 그런 불의를 낳는다는 것이 참 아아러니한 것 같다. 마지막 꼭지 한 마디가 여운을 남긴다.

광장의 시민들은 법복을 입은 제사장들이 ‘법’이라는 신탁을 전달하는 존재일 뿐, 그걸 창조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점을 종종 잊기도 한다.

댓글(0)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