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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의 독서노트

넷플릭스 블랙미러 "공주와 돼지"를 보고 나서

by 데이빗_ 2021.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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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미러 "공주와 돼지" 소감


들어가며


요즘 넷플릭스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소소한 취미라고나 할까요. 아내의 소개로 "오징어게임"을 보면서, 소재가 신선하고 구성이 정말 탄탄해서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요즘 엄청나게 히트를 치고 있지요. 국내 공공망을 사용한 방송들이 수위나 표현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제약이 있는 것과 달리, 소재나 표현에 있어서 아무런 제한 없이 작품을 시청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꼭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장면이 있어야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공중파 방송처럼 엄격한 정부 가이드라인의 제약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작품을 만들면, 아무래도 소재와 시나리오의 전개 방식에 있어서 풍부하고 다양한 작품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징어게임 다음으로 볼 만한 작품이 뭐 있을가 찾아 보았는데, "블랙 미러"라는 영미 드라마가 굉장히 유명하다고 하더라구요. 벌써 다섯 개의 시즌이 나왔는데, 하이테크 시대에 나타날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인 상황을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연속극이 아닌, 단막극이어서 모든 에피소드를 다 정주행 할 필요도 없고, 원하는 것들을 골라서 볼 수 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 날 때마다 하나씩 골라서 보고 있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소재로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은데, 첫 번째 시즌에서 방송되었던 "공주와 돼지"라는 에피소드는 정말 충격적이면서도 독특하고 기발했습니다.

"공주와 돼지"를 보고 나서 느낀 점

1. 대략적인 줄거리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영국 공주가 납치범에게 잡혀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납치범은 유튜브 방송을 통해서 공주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협박하면서, 수상에게 괴상한 요구를 합니다. 다름 아닌 돼지를 상대로 외설적인 행동을 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전국에 방송하라는 것이지요.

당연히 영국 내각 수상은 거부합니다. 여론도 납치범의 요구를 들어 주는 것에 부정적이었지요. 내각은 범인의 요구를 들어 주는 대신에 경찰을 투입해서 인질범을 검거할 작전을 세우고 실행합니다. 그러나 범인 검거는 실패하고, 마침 또 생각하지도 못했던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여론은 반전됩니다. 공주는 정말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고, 총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궁지에 몰립니다.

총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정말 치욕적인 요구를 들어줄 것인지, 아니면 그런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도 빠져나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있을지, 마지막까지도 긴장을 놓지 않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말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 못 보신 분들이 계실까봐 자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결말에 관한 것이 이 포스팅의 주제는 아닐 거니까, 관심 있으신 분들은 에피소드를 시청해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2. 소재의 기괴함


제가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정말 쇼킹했던 것은 우선, 소재의 기괴함이었습니다. 폭력적인 장면, 외설적인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심사와 규제의 대상이 되는 우리 나라의 가이드라인이나 대중정서에 비추어 볼 때, 영미권 드라마의 소재는 제 상상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 버린 넘사벽이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납치나 인질극 같은 것들은 흔한 소재니까 그렇다 쳐도, 한 나라의 국가수반의 외설적인 행동을 적나라하게 드라마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 우리나라였다면 허용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더 기괴한 것은, 그 외설적인 행동의 대상이 동물이었다는 거, 그것도 돼지였다는 거.

도대체 어느 정도의 상상력이면, 어느 정도의 창의력이면 이런 소재를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요?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해 낸 작가나, 그런 시나리오를 알아보고 드라마로 만든 연출가, 그리고 그 작품을 스트리밍서비스로 채택한 넷플릭스 담당자나, 정말 행동에 바운더리 없이, 제약 없이 작품 활동을 펼 수 있는 환경이나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것 같아서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천재들이죠. 작가나, 연출가나, 넷플릭스 담당자나. 누가 이런 소재나 전개, 그리고 그런 결말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3. 표현의 자유?


또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영국이 정치인에 대해서 저렇게까지 높은 수위의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나라였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느 나라나 정치는 희화화되기 마련이고, 정치인은 풍자의 대상이 되게 마련이죠. 그런데 이 드라마는, 행정부 수반을 완전히 바보를 만들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수상이 동물과 외설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을 소재로 삼을 만큼, 수위에 제약이 없습니다. 이렇게까지 거침없는 수위의 표현이 허용되어도 괜찮은 나라인가? 라는 생각이 들 만큼 놀라웠습니다. 우리 나라 같으면 불경죄에 걸릴까봐 알아서 자체 검열을 했을 텐데 말이죠.

더구나 국민의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왕실의 공주를 납치해서 유린하는 장면을 영화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본고장답게, 표현의 자유가 정말 깊게 뿌리내린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스스로 검열을 하는 작가였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시나리오였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영국 문화에 대해서 좀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여행을 가 보고, 책으로나 다양한 매체로나, 간접 체험을 해 보고 싶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 나라에서 특히, 왕실에 대한 인식은 무엇인지, 정말로 존경을 받고 있는 그룹인지도 궁금했고요. 문화도 많이 궁금했습니다.

마치며


정말 놀라운 소재에 괴상한 전개, 그리고 거침없는 수위와 한계 없는 표현의 자유가 집약된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놀라웠고 쇼킹해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일 것 같습니다.

작가와 연출자의 천재성에 한 번 놀랐고, 저런 수위까지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는 자유와 개방감이 엿보이는 것 같아 어떤 면에서는 부럽기도 하더군요.

물론 이 작품 하나 보고서 그걸로 영미권의 자유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점을 잘 알고는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이 정도 수위의 드라마가 거침없이 방영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겠네요. 저는 문화 충격을 받았습니다. 국내 방송이었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의 수작인 것 같네요. 앞으로도 넷플릭스 보면서 기억에 남았던 시리즈나 에피소드가 있으면 이따금 소감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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