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최근 가스라이팅 및 가정폭력으로 아내를 사망에 이르게 한 어떤 부사관의 처벌을 청원하는 글이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적이 있었죠. 저도 관심을 가지고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나서, 지난 주에 가스라이팅을 주제로 한 번 글을 썼었습니다.
가스라이팅 예시: 가스라이팅 상황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가스라이팅은 물리적 폭력이나 언어적 폭력만큼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학대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서서히 진행되는 심각한 학대의 한 종류입니다. 알아채기 힘들지만 심리적으로 돌이키기 어려운 심각한 피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매우 주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소개했던 Matthew Wallace 의 Dark Psychology 라는 책의 한 부분인 Gaslighting 을 참고해서, 가스라이팅의 징후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누군가의 관계에 있어서 불평등함을 느끼거나, 혹은 불안을 느낄 때 그것이 가스라이팅의 징후인지 한번 자가 점검해 보는 것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특정한 관계를 다룰 때 느끼는 본인의 감정을 스스로 진단해 봄으로써, 이 관계가 가스라이팅이 아닌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징후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내가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관찰할 수 있는 심리적 징후를 여러 가지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몇 가지를 추려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일지도 몰라.
분명히 상대방의 행동에서 불만을 느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자기 감정과 현실을 의심하는 것은 대표적인 가스라이팅의 징후라고 합니다. 상대방의 거짓말이나 뻔뻔스러움, 또는 완고함을 불편하게 여기면서도, 그 사람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함께 하게 된다고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방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것이 두려워서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을 피하게 됨으로써 이런 상황이 가속화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선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을 머뭇거리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본인이 너무 예민하거나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결론짓기도 한다고 합니다.
2.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움.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들은, 가해자로부터 교묘한 심리적 조작을 지속적으로 당함에 따라서, 스스로의 판단을 믿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중요한 일부터 사소한 일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결정하기를 어려워하고 다른 사람에게 결정을 위탁하게 된다고 하는군요. 주로 가스라이터에게 위임하는 경우가 많겠지요. 내 결정은 신뢰하기 어렵지만 상대의 결정은 믿을만 하다고 생각된다면, 그 사람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징후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조언합니다.
3. 상대가 항상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낌.
특별한 이유 없이 상대방을 의심하는 경우 내가 이상한 거라고 판단하기 쉽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가스라이터들은 항상 거짓말을 하고, 증거 앞에서도 당당하고 뻔뻔하게 역공을 가한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 피해자는 "무언가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당당히 지적하기는 어렵게 되지요.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기는 한데, 내가 기억이 이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혼란스러움이 자주 든다면, 그가 나를 가스라이팅하는 징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4. 상대가 나를 자주 비판하는 느낌이 든다.
"너는 너무 예민해.", 또는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왜 그렇게 일을 크게 만들어?", "너는 왜 매일 이렇게 준비성이 부족해?" 등등, 상대방이 나를 자주 비판한다면, 그것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가스라이팅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특히 평등하지 않은 연인 관계에서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할 수 있는데, 관계의 기울어짐이 고착되면 그것이 익숙해지게 되면서, 비판하는 쪽이나 비판당하는 쪽이나 무뎌지게 되기 쉽습니다. 가스라이터들은 피해자의 사소한 실수까지도 비판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훈계도 서슴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는 상대에게 별 지적을 하지 않는데 상대는 나를 자주 지적한다면,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5. 그 사람을 상대할 때 불안하고 조마조마하다.
이 역시, 앞의 맥락과 이어지는 부분인 것이지요. 가스라이터들은 본인의 실수는 축소하고 부정하는 한편, 피해자의 사소한 실수로 인해서 본인이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게 되면 그것을 크게 부풀려서 피해자가 굉장히 부주의하거나 얼이 빠진 것처럼 규정하고 비난을 가하는 수법을 사용합니다. 자주 비판을 받게 되면 피해자는 "나는 왜 이렇게 부주의할까?" 또는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없을까?" 등 자책이나 자학을 하게 되지요. 그러면서도 상대에게 종속되어 또 다른 비난을 들을까 봐 불안해하게 됩니다.
만약 지속적으로 특정한 사람을 상대할 때 불안하고 조마조마하다면, 본인이 피해자가 아닐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상대방은 모든 면에 있어서 나보다 우월한데, 나는 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어서 불안함을 느낀다면, 또는 그가 언제 화를 낼지 몰라서 조마조마하다면, 결코 건강한 관계가 아닌 것이겠지요.
마치며
오늘 포스팅에서는, 가스라이팅의 피해자가 자기 상황을 식별할 수 있는 몇 가지 자가 진단법을 공유해 보았습니다.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는, 본인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피해와 심각성을 생각해 볼 때, 그리고 관계의 건전성을 생각해 볼 때, 가스라이터와의 관계는 일찍 끝낼수록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것이겠지요. 모쪼록 모두가 긍정적인 관계 속에서 상호간에 건전한 자아상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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