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서적도 재미있을 수 있구나. 마이클 센델 교수의 유명한 저작이다. 딜레마를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어떤 선택이 정의인지, 왜 그 선택이 정의로운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비슷한 다른 상황에서도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지 등의 질문을 통해 도덕과 철학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드러내고 설명한다. 철학이란 게 무엇인지 맛을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이 책을 통해 내가 발견한 철학이란, “여러 사례에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원칙과 기준을 세우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초반에 제시되는 폭주하는 기관차의 사례는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가 두 갈래 길에 서 있다. 한 쪽에는 다섯 명의 철도노동자가, 반대 쪽에는 한 명의 철도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누군가를 반드시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가? 대부분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쪽이 낫다고 대답한다. 만약 그렇다면, 한 명의 목숨보다는 다섯 명의 목숨이 더 중하다는 뜻일 것이다.
이번에는 외길 철도 위를 브레이크 고장난 기관차가 지나가고 그 앞에 다섯 명의 노동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고 치자. 철도 위를 지나는 다리 위에 서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이, 옆에 있는 사람을 밀쳐서 기차 앞에 떨어뜨리면, 기차는 그 사람을 희생시키겠지만 작업하던 다섯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그것도 정당할 것인가? 두 사례에서 같은 대답을 할 수 없다면, “희생자의 숫자”가 일관된 판단 기준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면 두 사례에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은 무엇이며, 왜 그 원칙이 정당한지를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관된 원칙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철학이 아닌가, 내 나름대로 그렇게 정의해 보았다. 그런 다양한 도덕적 딜레마를 품은 사례들을 통해서, 어떤 철학사조의 핵심 이론이 무엇인지, 그것은 어느 때 정당화될 수 있는지, 어떤 경우에 부정당하는지 등을 알아볼 수 있었다.
책의 후반부에 제시되는 공동체 개념과 공동선의 개념도 흥미로웠다. 조상의 잘못을 내가 대신 사과하는 것이 가능한가? 국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나 개인에게 도덕적 책임이 있는 것인가? 엄밀하게 말하자면 자기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공동체의 행위에 대해 나에게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쪽의 주장에 동의하기 힘들었다. 어떤 논리로 어떤 결론을 끌어낼 것인지 흥미로웠고, 저자가 소개하는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의 “서사”라는 관념에서 논리가 뚫리는 것을 느꼈다. 개인의 삶은 공동체의 거대한 이야기 속의 한 부분이고, 나와 공동체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만들지 않은 훈민정음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내가 공을 차지 않았지만 2002 월드컵 4강 진출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공동체의 일부이고 그것을 인정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내가 하지 않은 일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면, 반대로 도덕적 책임의식도 함께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모든 케이스에서 빈틈 없이 적용 가능한 철학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철학 이론이 출현하고 새로운 철학 사상이 이전 이론에 대한 반박으로서 등장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태고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다양한 철학 이론이 다양한 형태로 실현되어 정치와 의사결정의 원리에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올바른 시민을 육성하는 것이 국가의 목표라고 주장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이후 나타난 자유주의 사상에 의해 반박당했지만, 그 자유주의 철학에 기반을 둔 현대 공화정 국가들도, 어느 정도는 ‘공동선’에 대한 개념을 정해 놓고 시민을 교육하고 양성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공동체 개념과 연결지어 저자는 나름대로 탁월한 논리선을 따라 가면서, 개인의 신념의 자유를 제1의 가치로 여기는 현대사회에서도, 정치 지도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공동의 선’을 추구하고 시민을 계몽하는 것이 가능하며, 또한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철학에 대한 소개를 접할 수 있었다. 다양한 철학 사조에 대해 얕게나마 그 개념을 잡아 볼 수 있었다. 그런 철학 사상들이 현대 사회의 다양한 정치 담론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특히 후반부에서 제시되는 공동체주의와 공동선에 관한 개념은, 극단적인 개인주의, 철저한 자유주의자였던 내 사고체계에 도전적인 자극을 주었다. 생각과 의식을 깨워 주는 또 한 권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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