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평
우선, 책이 뽀대나고 "있어 보여서" 샀다. 게다가 양장본이라니! 책은 겉모습보다 내용이 중요한 것이라지만, 취미란 것이 다 그렇듯, 뭔가 사는 즐거움, 소장하고 바라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캠핑 하는 사람들은 장비 사는 즐거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자전거 꾸미는 즐거움이라는 게 있듯, 자칭 독서가(?)인 나도 나름 서재 꾸미는 즐거움(?)이 지식습득 못지않은 즐거움인 것 같다. 인테리어 용으로 사서 한동안 꾸며 놓았다가, 맘 먹고 일주일 시간 들여서 완독을 해 보았다.
이전에 쓴 글에서, 특히 주식투자에 있어서는 철학적 기반과 사상적 무장이 중요한 것 같다는 내용을 적었다. 이 책도 왜 주식 투자를 해야 하는지, 왜 앞으로는 주식이 더 유망할 수밖에 없는지를 학자적인 시각에서, 데이터를 중심으로, 다소 무미건조하게 (?) 풀어가고 있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은혜가 넘치는(?) 자극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주식 투자"가 장기적인 재산 형성을 위한 올바른 방법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지난 200년간의 주식 실질수익률이 놀라울 정도로 일정했다는 것은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다. 로그 스케일로 보았을 때 거의 직선에 가까울 정도로, 주식의 누적수익률은 일정했다. 단기로 보았을 때의 출렁임 때문에 주식이 언뜻 위험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데이터 앞에서 정직하다면, 가장 안전해 보이는 자산이 가장 위험한 것이고 가장 위험해 보이는 자산이 가장 안전한 것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직장 동료들과 이따금 이야기할 때, 펀드나 주식 등은 불건전한 투기 수단인 것처럼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정직하고 우직하게 저축만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분들도 가끔 볼 수 있다. 광대역 오지랖이지만, 가장 위험한 수단에 인생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라면 최소한, "확실히 위험한" 자산에 인생을 걸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제 투자는 과거의 저축만큼이나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자산 형성 방법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릴 적에 "엄마 백원만" 하던 생각이 난다. 백 원을 받으면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을 수 있었다. 지금 100원으로 마이쭈 하나 사 먹을 수 있을까? 외환위기 때였던가, 빼빼로가 700원 하는 걸 보고 어린 생각에 '나라가 망하겠구나' 싶었는데, 지금 빼빼로가 얼마인지 모르겠다. 그저 돼지저금통에 현금을 꾸준히 모으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투기적이고, 얼마나 위험하고, 얼마나 무서운 생각일 것인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투자에 임해야 단기 변동으로 인한 위험을 상쇄할 수 있다. 100년, 200년간의 견조하고도 일정한 흐름을 도도하게 이어가는 누적수익률 그래프 앞에서, 고작!! 고작 5년, 고작 10년, 고작 20년의 기간을 가지고 "나름 장기"라고 여겼던 내 짧은 안목이야말로 얼마나 얄팍하고 부끄러운 것이었는지! 우공이 삽으로 흙을 퍼 나르는 마음가짐이 아니면 마음을 가지런히 할 수 없을 것 같다. 10년 박스권이라고 코덱스를 사 모으는 게 어리석은 것이라 콧방귀 뀌었던 생각을 다시 고쳐먹어야겠다. 10, 20년 박스권은 주식 역사상 전혀 특이한 이벤트가 아닌 것이니 말이다.
좋아하는 카테고리는 아니지만, 굳이 나누자면, 물려받은 거 없는 나는 요즘 말로 흙수저 카테고리에 들어갈 것 같다. 아, 대학 나왔고 대기업 들어갔으면 철수저 정도는 되려나? 처음에는 대박 쳐서 부자 되겠다는 생각으로 투자에 관심을 가졌지만, 내 대에서 열매를 따먹을 생각보다는 내 후세에 동수저, 은수저 정도는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시각으로 투자에 임해야겠다. 작은 눈덩이와 긴 슬로프야말로 엄청나게 커지는 "스노우볼"을 만들기 위한 필수 재료일 테니.
적지 않은 분량의 금융 강의, 경제 강의, 특히 행동재무학 강의는 기반지식을 넓힐 수 있는 유용한 기회가 되었다. 지식과 철학, 그리고 그 기저에 깔린 투자 사상을 함께 강화하고 싶은 투자자들이, 소장하고 두고두고 펼쳐 볼 수 있는 고전 같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주요 내용>
◈ 주식이 앞으로도, 그리고 장기적으로 유용한 투자수단인가?
• 주식의 수익률이 과거보다는 낮아질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투자수단이라는 근거가 압도적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스템이 계속 존재하려면, 아무런 법적인 보호를 받지 않는 주식에 대해 위험 프리미엄이 붙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6~7)
• 시장 정점에서 시작하더라도 주식에 장기투자하는 사람은 항상 높은 성과를 거두었다. 대공황 직전 정점에서 매달 15불씩 주식에 투자한 사람은 20년 뒤 9000달러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무시무시한 뉴스를 참아낸 주식투자자의 실적은 겁먹고 채권과 다른 자산을 선택한 투자자들보다 항상 높았다. 주식 장기투자가 낫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지난 210년동안 주식은 연 6.6%, 채권은 연3.6%, 단기국채 연 2.7%, 금은 연 0.7% 의 실질수익률을 보였다. 주식 실질수익률 추이는 매우 안정적이었고, 세기별로도 일정했다. 추세선 위아래로 출렁여도 결국 회귀한다. (28~29)
• 시장은 안전한 증권의 안전성과 위험한 증권의 위험성을 과대평가한다. 단기수익(‘안전한’채권)에는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치르고, 장기수익 (‘위험한’주식)에는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35)
◈ 2008 금융위기의 원인
• 경기가 둔화해서 자산 가격이 하락할 때, 부채비율이 높으면 버티기 어렵다. 2008년 금융위기는 금융기관들이 무리하게 레버리지를 써서 부동산증권을 대량으로 매입해서 벌어진 일. 부동산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서서 재정난에 빠지게 된 것. 미국의 명목 주택가격은 하락한 적이 없었으므로, 투자자의 신용도에 상관없이 담보부동산의 가치만 믿고 무분별한 대출을 일삼는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게 되면 이러한 대출 모델의 전제 자체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54~57)
◈ 고령화, 저성장이 예견되는 다음 시대에도 주식이 낙관적이라는 근거는?
• 고령자 증가라는 인구구조의 변화가 자산수익률 비관의 근거가 되었지만, 이런 방식은 틀렸다. 선진국은 고령화가 심각하지만, 신흥국은 아직도 청년이 많다. 신흥국 노동자들이 선진국 은퇴자들에게 상품을 충분히 생산해서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신흥국의 GDP 가 계속 증가할 것이고, 앞으로는 선진국들을 압도할 것이다. 이렇게 축적된 신흥국들의 돈이 미국 은퇴자들의 자산을 계속 매수할 수 있을 것.. (99~103)
• 선진국의 기술 수준은 포화에 이르러서 생산성 증가율은 점차로 떨어지고 있지만, 신흥국은 아직도 선진국의 기술 수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이 많고, 점차 이들의 소득이 높아져서 선진국이 과거에 개발해 놓은 혜택을 받게 되면 이들의 생산성은 빠르게 증가될 것이다. (106~107)
• 주식이 다른 모든 자산을 압도한다. 연평균 8.1% 명목수익률 기준. 여러 세대에 걸쳐 인내심을 발휘한다면 주식에 투자한 1달러가 수백만 달러로 불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 인내심을 갖춘 사람은 거의 없다. (114~115)
• 그 동안은 연 6~7% 수준의 실질수익률을 보였지만, 앞으로는 PER 자체가 더 상승할 수도 있다. 거래비용감소를 고려하면 PER 은 20이 되어야 한다. 채권수익률 하락으로 인해서 주식 요구수익률도 낮아졌고, 주식 위험프리미엄 자체도 감소하고 있다. 따라서 잘 분산된 주식을 적정가격 이하로 사면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218~221)
◈ 주식을 실제로 고를 때는..
• 성장주의 전망을 과도하게 낙관하여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치르면 안된다. (175)
• 위험을 고려해도 저 PER 주의 수익률이 고 PER 주보다 훨씬 높다. 상습적으로 주식을 평균 이익의 16배가 넘는 가격에 사면, 장기적으로 상당한 손실을 보기 쉽다. (235)
• 주식을 사거나 파는 사람은 순자산가치를 감깐만이라도 훑어보고 사야 한다. 지성적인 투자자라면 첫째로, 실제 지불하는 가격을 파악해야 하고, 둘째, 실제로 얻는 유형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회사의 가치 중 지적재산의 비율이 갈수록 증가할 것이므로, 순자산가치로는 회사의 미래 가치를 추정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237)
◈ 거시경기변화, 정치/사회적 변화와 주식시장
• 급격한 주식가격의 변동 중 1/4 이하만이 정치적/경제적인 사건 사고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시장 예측은 불가능하다. 세계적인 사건은 단기적으로는 충격을 주지만, 장기적인 성과로 인해 주식 참여자들은 결국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321)
• 경제분석을 통해 시장반응을 예측할 수 있지만,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매하는 것은 단기변동성을 노리는 투자자에게 적합하다. 대부분 투자자는 물러서서 관망하면서 장기투자 전략을 고수하는 편이 낫다. (337)
◈ 행동심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투자자 행태
• 모두가 주식에 열광할 때는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주가는 경제 가치 뿐 아니라 심리 요소에도 좌우된다. 군중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다들 뭐가 좋다고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손해 보는 느낌. 이것이 사회적 압력이다. (426)
• 잦은 매매는 재산에 해롭다. 거래가 많은 트레이더들의 수익률이 거래가 가장 적은 트레이더들보다 7.1% 낮았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평균보다 낫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통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428)
• 주식시장이란 자신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곳이다.
◈ 투자자를 위한 가이드 중에서.
• 펀드 수익률이 낮은 것은 수수료와 경쟁 때문이다. 수수료가 2% 이상. 펀드매니저들이 다 시장 참여자들이므로, 누군가 초과수익을 얻었다는 말은 누군가가 언더퍼폼 했다는 뜻이다. (453)
• 장기적으로는 주식의 수익률이 채권보다 더 안정적이다. 주식은 채권과는 달리 인플레이션도 방어한다. 따라서 투자 지평이 길어질수록 주식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또한, 저비용 인덱스펀드의 비중이 가장 높아야 한다. (464~465)
•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관리 원칙을 확고하게 수립하라. (466)
'데이빗의 독서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후기 :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2) | 2016.05.29 |
---|---|
독서후기 : 이제 책쓰기가 답이다 (1) | 2016.05.29 |
독서후기 : 과정의 발견 (0) | 2016.03.16 |
독서후기 : 평생독서 (0) | 2016.03.16 |
독서후기 : 김병완의 초의식 독서법 (0) | 2016.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