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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의 독서노트

독서후기 : Not a Fan. 팬인가 제자인가

by 데이빗_ 2016.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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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verview |

리디북스에서 구매한 두 번째 책. 많은 교회에서 제자훈련 필독서로 지정되어 읽기를 권하고 있는 유명한 책이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7장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라고 가르치셨다. 저자는 책에서 "당신은 그저 입으로만 추종하는 예수의 팬인지, 삶을 예수께 온전히 드린 제자인지"를 집요하게 캐 묻는다. 수많은 예시와 자가진단을 위한 질문들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가 예수님과 온전히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따져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불편한 내용이다. 그래서 외면하고 싶은 내용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결심한 이상, "당신은 팬인가 제자인가?" 라는 질문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것이 단지 "교적부에 이름을 올린 사람" 이상의 의미이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용기를 내어 진지하게 읽어볼 만한 책이다.


● 느낀 점

유년기에서 청소년기를 거쳐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나는 "모범 교인"이었다. 주일예배를 빠지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고, 성경은 십수 번을 읽으면서, 어지간히 디테일한 성경 지식에도 자신이 있었다. 기독교 교리와 성경 해석도 평신도 치고는 나름대로 정통(?)한 수준이었다. 나만큼 열심히, 나만큼 모범적으로, 나만큼 깊이 사유하며 신앙생활 하는 사람을, 적어도 나와 비슷한 또래에서는 보지 못했다. 그런 내게 이 책은 당돌하게도(?) "당신은 진정한 제자입니까?"라고 묻는다. 불편했다. 그리고 심기가 뒤틀렸다. 왜 그랬을까. 그렇게 "모범 교인"이었던 내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제자도의 길을 제대로 걸어 왔다면, 그리고 걷고 있었다면, 불편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고백하건대, 제자인지를 묻는 질문 앞에서 당당하게 그렇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예수와 친밀한 관계안가?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 그를 위해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가? 생활의 모든 우선순위에서 그분을 유일한 가치로 두는가? 내 삶은 예수께서 이끌어가고 계시는가? 그가 어디로 나를 이끄시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길 준비가 되었는가? 25년 넘게 신앙생활을 "모범적으로" 해 왔건만, 내 삶의 주인은 아직도 나 자신이었고, 내 인생계획의 오너도 여전히 나 자신이었다. 내 돈은 여전히 "내 것"이었고, 내 시간도 여전히 "내 것"이었다. 도대체 내 삶의 무엇이 예수의 것이었던가? 내가 가진 자원의 어느 부분이 예수의 것이었던가?

수했던 청소년기의 헌신의 다짐은 어디로 간 채, 나는 삶과 신앙을 분리하고 있었다. 신앙은 그냥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마법의 구슬"같은 것이었다. 내 삶의 곤고함이, 어쩌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 자리에 앉아 있어서는 아니었을까? 제자가 아닌, 팬의 자리에 있어서는 아니었을까. 

제자됨은 어떤 행위의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헌금을 많이 내는지, 교회 활동에 빠지지 않는지, 성경을 매일 읽고 매일 기도하는지 같은 표면으로 드러나는 액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모든 행위의 기저에 예수를 향한 사랑이 있는지,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예수를 향한 사랑이 솟고 있는지, 예수의 가르침이 삶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지, 일상 생활에서 그분의 가르치심이 관철되고 있는지, 예수 한 분만으로 인생의 만족을 느끼고 누릴 수 있는지, 다른 것 다 치우고도 순수하게 "구원의 기쁨"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한편, 저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인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아마 그것은 획일적으로 제시하기가 불가능한 것이었으리라. 어쩌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까지는 쉬운 선택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미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제자됨을 실천한다면, 이 책에서 가르치는 대로 엄격한 제자도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쉽지 않은 문제가 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한 달에 300만원의 소득이 있다고 치자. 헌금, 어려운 이웃을 섬기기 위한 돈, 필수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생활비 등을 떼니 100만원이 남았다. 이 돈으로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가고, 미래를 위해 저축도 해야 한다. 그런데 제자도에 따르면 제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좇아야 한다. 이 사람이 100만원을 남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따지고 따지고 따지다 보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100만원을 더 쓸 수 있었음에도 남긴 동기는, 해석하기에 따라 자기의 즐거움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기저에 깔려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100만원 저축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의"삶을 위해 "부를 땅에 쌓아놓은"것이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어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야 문제되지 않는다. 스스로 매사에 "내 행동이 제자의 행동인가"를 따지고 따지다 보면, 결국 여가 생활도, 외식도, 저축도 "제자의 행동이 아닌 것"이 될 여지가 있다. 새벽에 깨어 성경 읽고 기도하는 대신 잠을 자는 것도 "나를 우상으로 두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인간의 모든 행동은 "합리"를 가장한 "욕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비꼬기 위해 지나치게 극단적인 예시를 든 것인가? 아니다. 저자가 "모든 것을 버리고"예수를 좇아야 한다고, 적당주의는 용납되지 않는다고, 예수가 "최우선순위"가 아니라 "유일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내 삶에 적용해 본 것이다. 극단적인 예시가 아니다. 저자도 "전부를 포기하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했고,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가족도 버리고 당신을 좇을 것을 요구하셨다. 제자들은 "그물을 버려 두고"예수를 좇았다. 결국, "온전히 예수께 헌신하려면", 모든 돈을 다 버리고 직업도 버리고 미래도 버리고 목회자나 전도자로 사역하든지, 자원봉사자로 나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요컨대, "온전한 헌신"의 기준을 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것은 현실세계에 있는 있는 대부분의 평신도에게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과 계획이 유지되는 수준에서"라도 제자됨을 하나씩 더 실천해 가는 것은 분명 가치있는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구원의 기쁨에 만족하고, 내 야망을 조금은 더 내려놓고, 하나라도 집착을 더 내려놓고, 내 뜻대로 하고 싶을 때 한번쯤 더 생각해 보는 것, 가족을 대할 때 한번쯤 "그들을 섬긴다는 생각"으로 대하는 수준에서부터 제자도를 실천해 보는 것이 적당한 시작점인 것 같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특정한 헌신을 요구하시거나, 일상 생활에서 하나씩 더 깨닫게 하시는 것, 시정을 요구하시는 것이 있을 때마다 고쳐 나가는 것이 가장 최선의 답인 것 같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일을 꾸미지 않으신다. 그러나 지금 당장 성령님께 여쭙자. 그리고 마음 속에 말씀하시는 부터 하나하나 깨닫고 순종하는 것. 그런 결단을 하는 것. 그렇게 제자가 되어가야겠다.


● 기억에 남는 구절

지식과 친밀함, 이것이 팬과 제자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점 중 하나다.

다급한 처지에 놓이면 진정으로 믿는 대상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언제 불같이 화를 내는지를 보면, 무엇을 가장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축약) 구약 성서의 영웅처럼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보았을 때 부럽고 대단해 보이지만 , 어쩌면 그들이 우리를 더 부러워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계셨지만, 지금은 우리 "안에"계시므로.

힘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하면 녹초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셔서 능력을 주실 것이라 약속해 주셨다.

제자의 궁극적인 조건은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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