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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의 독서노트

호모 사피엔스, 기독교인의 눈으로 본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by 데이빗_ 2025.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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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만 사람이었을까요?

『사피엔스』의 첫 장을 읽으면서 꽤 흥미로웠습니다.
흔히 생각해온 인류의 계보, 즉 에르가스터가 에렉투스로 진화하고, 에렉투스가 네안데르탈인으로 이어지며, 결국 그 끝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식의 단순한 직선적 진화 모델이 사실은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저는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진화모델이 직선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의 <사피언스>는 그게 아니라고 하는군요.
오히려 지금 우리가 지구 위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인류라는 사실이 얼마나 예외적인 상황인지, 과거에는 동시에 여러 호모 종들이 공존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묘한 낯설음이 일었습니다. 우리는 왜 지금껏 '인간은 곧 우리'라는 전제에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고 살아왔을까요? 다양한 인간 종이 존재했다는 과학적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그 현실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요?
아마도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인류는 오로지 사피엔스만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와는 다른 인간 종들이 모두 사라지고, 그 흔적조차 희미하게 남은 채로 오늘날에 이르렀기에, 우리는 '인간은 본래 하나였다'고 믿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다종 인류와 '단일 인간관'의 충돌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 지구상에 여러 종류의 인간이 동시에 존재했다는 점입니다.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데니소바인,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같은 다양한 인간 종들이 때로는 서로 다른 대륙에, 때로는 서로 인접한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동물'과는 분명히 다른 특성을 지닌 존재들이었죠.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피우고, 때때로 집단 생활을 하며 생존을 이어갔던 이들은, 엄연히 인간이라 불릴 수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인간은 하나다'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적으로는 사실이 아니지만, 문화적으로는 아주 강력한 신념처럼 자리 잡고 있지요. 무지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수많은 인간 종 중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았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러한 세계관을 더욱 강화시켰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록하는 모든 것은 사피엔스의 시각에서 이루어진 것이죠. 다른 인간 종은 이미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존재 자체를 일상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신앙의 영역과도 연결되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과학적으로도, 다른 인간 종들이 모두 사라지고 사피엔스만이 남게 된 계기는,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는 "인지 혁명"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거죠. 허구의 것을 상상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을 의미하는데, 마치 그 시점부터가 본격적인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적으로 말하는 '인간'은 곧 사피엔스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피엔스가 유일하게 남은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인류와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신 것일까요? 과연 하나님은 호모 사피엔스만을 '사람'으로 여기셨을지, 아니면 다른 인간 종들에게도 영혼과 신적 관계가 있었던 것일지 온갖 질문들이 떠오르더라구요.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사람'의 경계

호모 사피엔스 외에도 여러 인간 종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저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배워왔습니다. 그 '사람'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생물학적 인간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도덕적 책임을 지며, 영혼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런데 과학은, 호모 네안데르탈인도 도구를 사용했고, 때로는 장례의식을 치른 흔적도 있으며, 복잡한 사회 구조를 이루고 살았다고 말하죠. 그렇다면 그들도 '사람'이었을까요?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존재였을까요?
 
기독교의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사람'은 단지 두 발로 걷고,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입니다. 이 형상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인격, 도덕성, 자아 인식, 창조성,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능력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부르신 존재는 호모 사피엔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을 인식하고 예배하며 응답할 수 있는 자들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어떤 존재를 향해 "너는 나와 교제할 수 있는 존재다"라고 말씀하신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시점이 언제였을지, 누구에게 먼저 주어졌을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피엔스가 다른 종들과는 달리 종교적 상징, 복잡한 언어 체계, 예술과 문화, 그리고 신을 향한 감각을 갖기 시작한 그 시점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된 '창조의 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창조'는 단순히 물리적인 탄생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 곧 하나님의 형상이 부여되는 사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과학이 말하는 인류의 기원과, 성경이 말하는 창조 이야기는 반드시 충돌하지 않고도 서로 다른 층위에서 같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피엔스와 종교의 탄생

사피엔스가 다른 인간 종들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은, 단순히 뇌의 크기나 도구 사용 능력이 아니라,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공유하는 능력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어의 정교함, 예술의 표현, 상징의 사용, 그리고 신앙—이런 것들은 모두 상상력을 바탕으로 공동체 안에서 공유되는 개념들입니다. 유적을 통해 드러난 종교적 행위나 장례의식은 대부분 사피엔스의 삶에서 발견되며, 이는 그들이 단순히 생존을 넘어서 '삶의 의미'와 '죽음 이후'를 사유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사피엔스가 종교를 만든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사피엔스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 것일까요? 이 질문은 단순히 신앙을 의심하는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과 신의 관계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물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종교가 인간의 불안과 공포 속에서 만들어진 '생존의 장치'라고 말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느낀 무력감,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 앞에서 인간은 신의 존재를 상상했고, 그것을 통해 질서와 위로를 얻고자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신앙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집단적 허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또 다른 관점도 존재합니다. 사피엔스가 비로소 '신'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정신적 능력과 인격적 관계성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항상 계셨지만, 오직 사피엔스를 통해 그 존재와 뜻을 드러낼 수 있는 시점이 되었기에, 그때부터 신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시각입니다.
 
이 두 시각은 서로 반대되는 주장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하나의 현상을 바라보는 다른 깊이의 해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신을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인간만이 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였다는 사실은, 신앙과 과학, 상상과 계시가 절묘하게 맞닿아 있는 지점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신앙과 과학의 대화 지점

이런 생각들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신앙과 과학은 정말 서로 충돌하는가?'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과 창조신앙이 서로 모순된다고 느끼지만, 저는 점점 그렇게 단순한 대립 구도로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과학이 말하는 '사피엔스 단독 생존 시점'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류의 창조 시기가 묘하게 겹친다는 점입니다.
 
다른 호모 종들이 모두 사라지고 오직 사피엔스만이 지구를 지배하게 된 시점이 대략 1만 년 전. 그리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기독교의 '짧은 지구 역사설'도 인간의 역사를 약 1만 년 안팎으로 봅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접근을 통해 도달한 결론이지만, 결과적으로 '사람다운 인간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에 대한 일종의 합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일치는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차원의 설명일 수도 있습니다. 과학은 '어떻게'에 대해 설명하고, 신앙은 '왜'에 대해 답합니다. 그 두 언어는 결이 다르지만, 같은 인간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겹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요?
 
신앙의 관점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고, 그 사람과 교제를 나누셨다." 이고,
과학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의 긴 흐름 속에서 독특한 특성과 능력을 지닌 종이다."
 
이 두 관점을 함께 놓고 사유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라는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유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이 왜 굳이 사피엔스를 통해 자신의 뜻을 펼치셨는지에 대한 단서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결론 혹은 열린 질문

이 모든 생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분명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질문들이 남게 됩니다. 호모 네안데르탈인에게도 영혼이 있었을까? 하나님은 사피엔스만을 '사람'으로 보셨을까? 혹은, 사피엔스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점차 드러내셨던 것일까?

저는 아직 이 질문들에 대해 완전히 정리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하게 느끼는 것이 있다면, 이 질문들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피엔스라는 존재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신을 묻고, 삶의 목적을 찾으며, 죽음을 넘어서 의미를 찾으려는 존재입니다. 그 질문 자체가 우리를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게 만들고, 또한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능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셨기에, 인간은 신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이 신을 상상할 수 있었기에, 신은 자신을 드러내셨던 걸까요? 어쩌면 두 질문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이 책의 남은 부분이 기대되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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