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데이빗의 독서노트

독서후기 : 반응하지 않는 연습

by 데이빗_ 2016. 10. 12.
반응형



기독교 신자로서 스님이 쓴 책을 제대로 읽어보긴 이번이 처음이다. 모든 괴로움은 마음의 반응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외부의 자극에 대해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는 것. 외부의 자극은 자극일 뿐, 그 자체로는 어떤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는 거다. 모든 불행과 고민은 외부의 자극을 내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렸을 뿐이라는 거다. 외부의 사건을 내가 조절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면, 마음은 항상 통제할 수 있으니 그걸 배우자는 컨셉인 것 같다. 맞는 말인 듯.

고민과 괴로움, 우울과 불행은 외부의 사건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반응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외부의 사건에 집착하는 마음의 반응 때문에 내가 불행해질 필요가 있겠는가? 다른 사람의 행동 때문에 화가 났다면? 그 사람이 꼭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행동해야 할 사명이나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의 행동에 왜 내가 집착해서 내 마음이 상해야 하지?

이건 사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아내 때문에, 혹은 남편 때문에 화가 났다. 대체 왜? 상대는 상대일 뿐이고 나는 내 마음을 지키면 그뿐인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좀 덜 화낼 수 있었다. 결혼 초기에는 참 많이 화를 냈다. 나를 존중해 주지 않는 느낌이 들어서. 나에게 짜증을 내서.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지 않아서 등등.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상대방의 자유이다. 내가 그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은 나의 정당한 권리이거나 의무라도 되는건가? 상대의 행동을 내가 내 멋대로 해석한 게 일차적인 이유였다. 그리고 처음부터 화내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도 숨어 있었던 거다.

잠언 4장 23절에도 그런 말씀이 있다. 마음을 지키라고. 외부의 상황이 어떻든, 마음을 지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이 책은 불교 서적이라기보다는, 심리학 서적에 가까운 것 같다. 일상에서 만나기 쉬운 각종 상황들마다, 어떻게 마음을 지킬 것인지, 어떻게 반응하지 않을 것인지, 실제로 써 먹을 수 있는 유용한 테크닉들이 많이 담겨 있다.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타 종교인이 쓴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근데 이 책을 계기로 불교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뭔가 숭배하지도 않고 메시야를 자처하지도 않는다. 내세에 대한 관점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빼면, 살아 있는 동안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테크닉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스님들이 쓴 책을 좀 많이 읽어 보아야겠다.

이런 마음 다스림 분야에서, 불교 서적에는 기독교 서적이 따라올 수 없는 강점이 있다. 기독교 서적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절대 당위가 있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우리가 어떤 행동 양식을 취해야 한다거나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모든 행동의 판단 기준은 “그분이 원하시는가, 아닌가”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한 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에”라는 당위성에 맞추어 어떤 행동을 권하는 것은, 이 세대에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운 것 같다. 그것 말고, 그렇게 행동하면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좀더 자세히, 친절하게 설명해 주어야 설득력이 있지. 기독교는 아직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행복과 불행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가 좀더 행복을 누리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충분한 고민이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참된 행복의 수요가 더 많아진 이 시대에, 기독교는 세상에 던질 수 있는 충분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꺼내어 풀어놓을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이지. 기독교가 이 시대에 좀더 어필하기 위해서는, 이제 대중 속으로 다가오고 있는 불교의 행보를 주목해야 할 것 같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