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읽기 말고, 깊이 생각하기
많은 독서법 책에서 말하듯,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과정이다. 읽은 내용을 다시 한 번 씹어서 소화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기억에 좀더 잘 남길 수 있고, 생각의 폭이 확장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꼼꼼히 밑줄치며 읽고 메모하면서 이런 과정을 거치고, 어떤 사람은 책의 내용을 수기로 옮겨 적으면서 사유의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그저 읽기만 하는 사람'에서 좀더 잘 읽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된 것은, 김병완 작가의 '초의식 독서법'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책은 지식을 쌓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의식을 넓히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독서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그저 읽고 치워 버리는 독서가 아니라, 뭐 하나라도 읽은 것들은 발자국을 남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읽게 되었다.
그 방법으로 선택한 수단은 독서일기 남기기였다. 전문 작가들이 쓰는 거창하고 완성도 있는 서평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독후감 정도는 남겨 보자, 그리고 마음에 남는 구절 정도는 남겨 보자는 뜻에서 한 편 두 편 독서일기를 적기 시작했고, 어느 새 80편에 육박하게 되었다. 읽고도 후기를 못 쓴 책은 더 많지만, 최소한 후기가 있는 책들은 허투루 읽지는 않았다는 정도의 의미를 가질 것 같다.
많이 읽기? 바로 읽기? 다독? 정독?
많이 읽기와 바로 읽기 .. 동시에 잡기가 참 어려운 두 마리 토끼인 것 같다. 제대로 독서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일 년에 백 권 읽기" 등과 같이 숫자로 채워지는 목표를 한 번쯤은 세워 봤을 것이다. 일 주일에 한 권씩 읽어도 상당히 많이 읽는 편인데, 연간 백 권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보통 이상의 독서가들에게 해당하는 목표가 아닐까 싶다.
정통 독서가들은, 권수를 채우는 독서목표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고 내용을 새겨서 생각을 넓히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집중해야지, 책만 많이 읽었다고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지만, 나 같은 초심자들은 그렇게 권수 채우는 목표를 세워서라도 뭔가 성취감을 느껴 보고 싶고, 그런 수단을 써서라도 조금이나마 많이 읽으려 스스로를 채찍질한다는 점에서, 권수 채우기에 주력하는 것도 마냥 해롭지만은 않을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양질전환의 법칙이라 해서, 많이 읽는 과정에서 깊게 읽는 습관이 터득되기도 할 것이니 말이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어쨌든, 일 년에 백 권 읽기라는 목표는 책을 꼼꼼히 사유하고 충분히 곱씹으면서 달성하기가 쉬운 목표는 아니다. 초보 독서자로서, 꼼꼼히 사유하고 충분히 내용을 흡수하고 싶으면서도 양을 채우고 싶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좀더 효율적이고도 효과적으로 독서후기를 작성하는 프로세스를 계발할 필요가 있었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읽으면서 내용을 요약해 보기도 했고, 다 읽고 나서 기억에만 의존해 독서후기를 써 보기도 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1차적으로 정립한 프로세스는 이와 같다.
나름 정립해 본 독서 정리 프로세스
① 1회독은 가급적 빠르게 한다.
아주 어려운 책이 아닌 이상, 시간을 정해 놓고 집중적으로 읽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최대한 빨리 읽는다. 내용을 빠르게 파악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나에게 맞는 책인지 아닌지를 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시폭확장, 퀀텀리딩 등의 테크니컬한 방법이 활용되기도 한다. 소제목, 꼭지 제목과 두괄식 문단의 첫 문장 등의 도움을 받으면 좀더 쉽게 주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다. 와 닿는 구절은 반드시 밑줄을 치거나 형광펜으로 네모를 치면서 읽는다. 나중에 재독할 때 징검다리 역할을 해 준다. 밑줄을 남용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② 재독은 가급적 밑줄친 부분과 북마크 위주로
한 번 다 읽고 나면 책의 얼개가 대략 눈에 들어온다. 다음으로는 밑줄 친 부분과 북마크 위주로 책의 내용을 빠르게 리뷰해 본다. 이 과정에서, 버릴 만한 내용과 건질 만한 내용을 다시 한 번 나누어 본다. 건질 만한 내용은 검정색 볼펜으로 네모 박스를 쳐 놓는다.
③ 카메라 어플로 발췌할 부분 사진찍기
카메라 어플로 네모 박스 친 부분을 발췌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렌즈 등의 앱을 활용하면, 네모박스 친 부분만 예쁘게 잘라서 찍어준다. 그렇게 해서 대략 한 권당 20~30개 구절을 발췌해 놓으면 나중에 독서일기 쓸 때 참고할 만한 구절이 된다.
④ 독서후기 작성
워드에 책 표지 사진을 넣고, 대략적인 내용과 느낀 점, 배운 점 등을 적은 뒤, 발췌한 구절 중에 4~5개 정도를 골라서 칼라 글자로 하이라이팅 하고, 그에 대한 개인적인 반응, 깨달음 등을 적는다. 나머지 발췌 사진들은 뒷쪽에 일괄적으로 붙여넣기 한다.
⑤ 포스팅
카메라로 찍은 발췌사진을 전부 올리면 저작권법 위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므로.. (자기검열 ㅜㅜ) 이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블로그에 포스팅한다. 적당히 그림도 있으면 더 좋겠는데, 아직 예쁘게 포스팅하는 법을 모르므로..
써머리
대략 이런 과정으로 책 읽고 나서 포스팅을 하니, 한 시간 내지 두 시간 정도에 주요 문장 발췌와 대략적인 후기를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어려운 책들은 이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읽은 책에 대한 기억을 나만의 방식으로 저장하는 프로세스를 개발해 놓으니 큰 고민 없이 후기를 남기고 포스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은 어디까지나 읽은 책들의 1차적인 발자국만 저장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해 놓고 책을 제대로 다 읽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기만이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라도 해 놓아야, 나중에 "아, 그 내용이 어느 책에 있었더라?" 하고 생각이 날 때 그나마 잊어버리지 않고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책을 충분히 씹어먹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인덱싱 작업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하겠다.
백권 읽기 프로젝트 중이기는 해도, 좋은 책을 만나거나 어려운 책을 만나면 양을 기꺼이 포기하고 제대로 읽는 데 집중해 볼 생각이다. 책을 읽고 깊이있는 사유를 연습해야 할 시기에 이 나름 고귀한(?)행위를 기계적인 프로세스로 전락시킨 데 대해 약간의 죄책감이 없지는 않지만.. 할 일이 너무 많고 바쁜데 독서후기까지 쓰려니 나름대로 정형화된 절차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쓸데없는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게 되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무튼, 좀더 좋은 프로세스가 있으면 언제든지 개량해 볼 생각이다. 그래도 핵심은, 깊게 생각하고 시간을 투자해서 글을 써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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