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9일 (월)
고든 맥도날드의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벌써 3~4회 읽은 책인데, 읽을 때마다 새로운 내용에 새로운 영감을 준다. 나는 내면 세계가 얼마나 잘 정돈되어 있는가? 나는 쫓겨다니는 사람인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인가? 더욱 도전해야 한다, 더 많은 재산과 부를 쌓아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음성인가, 아니면 분주한 세상의 목소리인가? 은퇴 준비를 해서 노후에 빈곤할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지혜로서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맘몬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다각도의 측면에서 스스로의 내면 세계를 관찰했을 때, 쫓겨다니는 사람의 면모를 여러 군데 갖추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한 마음의 기저에 하나님을 불신하고 돈을 의지하는 마음이 깔려 있으며,그로부터 비롯된 내적 결과는 평안이라기보다는 불안과 초조함임을 깨닫는다.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다루어져야 할 부분임을 느낀다.
물질적 풍요와 공적 세계에서의 성공이 저절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님을 여러 책이나 사례를 통해 간접적으로 배워 왔고, 요즘 들어서는 스스로도 느낀다. 고든 맥도날드의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공적 세계에서의 성공은 항상 "조금 더, 조금 더" 하는 팽창적 요소를 가지고 있고, 그 이야기인즉슨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심각하게 결과 지향적이다 보니, 그 결과를 얻기 전까지는 그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기가 아주 어렵다는 속성까지 지닌다. 기본적으로 경쟁을 통해 이겨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그 아래에 깔고 있어서, 스스로도 행복할 조건의 범위를 (그것이 진정 행복이라 하더라도) 아주 좁혀 놓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
명예와 돈을 쌓고자 하는 것도 어찌보면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론이라면, 명예와 돈을 가지기 전부터 (혹은 가지지 않았을 때에도) 행복한 것이 더 지혜로운 길일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마음의 고요와 안정,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의미 있는 대화, 친밀감 등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요즘은 조금씩 느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는 것과 이것을 지키는 것인데, 외적인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내면 세계의 행복과 고요와 평안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것이다. (고든 맥도날드는 이것을 내면 세계의 질서라고 표현한다) 만약 그러한 내공을 갖출 수 있다면, 조건이 붙은 행복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2015년 10월 28일 (수)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을 거의 다 읽어 간다. 이 책의 메시지는 “쉼없이 굴러가는 공적 업무의 현장” 속에서 “영혼의 평온과 강건함을 유지하자” 라는 주제이고, 그를 이루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끊임 없는 공적 세계의 충성과 헌신의 강요 속에서,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이 시대의 메시지 속에서 내면 세계의 질서와 균형을 잘 찾는 것이 이어지는 공적 세계에서의 일을 더 능력 있게 잘 해 내는 비결이 될 것이다. 마지막 파트는 “쉼”에 관한 것인데, 우리의 안식일을 보내는 현실과 너무나도 대비되었다.
안식이란 무엇인가. 그저 “영적인 것처럼 보이는” 활동에, 즉, “교회 활동에” 매몰되어 있다 해서 우리의 영이 진리로 충전받는 것인가. 실제 오늘날의 많은 교회 활동은 진리의 상기를 통한 영적 재충전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도구가 되기보다는, 자아 실현과 명예의 추구를 위한 또 다른 수단이자, 또 다른 “공적 활동” (즉, 내면 세계를 정돈하는 작업이 아닌) 의 연장일 뿐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 활동이 “교회 내에서”수행된다는 이유로 “그것이 바로 안식이다” 라고 스스로를, 그리고 대중을 속이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교회 내에서 봉사를 많이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것일 수도 있다. 꼭 필요한 곳에서, 은사가 있는 곳에서 한두 가지 정도 하는 것은 유익한 일일 수 있지만, 아침예배, 저녁예배, 성가대 연습, 교회학교, 반주 등,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서까지 일에 참여하려는 것은 성경적으로 올바른 것이 아니다.“주님께서 힘 주시면 다 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봉사를 권하고 강요하는 작태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안식일은 “영혼을 재충전하는 데에” 집중해야 할 것이고, 때로는 예배 자리에서, 그리고 때로는 한적한 산에서, 들에서, 강에서, 조용히 자신을 반추하고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안수집사, 장로 타이틀보다도, ‘봉사 열심히 하는 일등 신자’라는 명예보다도, 교회 지도자와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보다도, 내 영혼이 하나님과 만나 교통하도록 하는 일에 더 많은 가치를 둘 수 있는가.
영혼이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 일 주일에 하루.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공적인 삶의 영역에서 나도 모르게 세상적인 야망과 성취욕에 물들어 있다가도, 일 주일에 한 번씩 (Regularly) 그러한 것이 얼마나 내면의 평온을 빼앗아가는지, 당초에 하나님 앞에서 의식적으로 추구하고 지향하기로 했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정신없이 일에 매몰되어 살다가도 “정기적으로”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새겨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일주일 내내 조출 야근에 시달리다가도, 정기적으로는 가족과 아이들에게 줄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새로이 교회를 정하게 되면, 너무 많은 일을 하려 하기보다는 안식일을 누리고 쉬는 데 집중해야겠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많은 교회들의 율법주의는 얼마나 성경적인 정신에서 위배되어 있는 것인가. 힘든 것이 항상 유익한 것은 아니다. 규정과 일에 매몰된 마르다가 되지 말자. 진정 좋은 것을 선택하는 마리아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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