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회사생활을 어느 정도 한 사람들에게는 짧은 발표자료 만드는 것이 그렇게 부담되는 일이 아닐 수 있지만, 신입사원들에게는 꽤 부담스러운 일이지요. 저도 후배들과 업무 관련해서 논의를 하다가 나름대로 협업 부서에 메시지가 정리되었다고 생각할 때, 후배들에게 “자료를 만들어서 미팅 때 발표하라”는 지시를 할 때가 있습니다.
“A,B,C 자료를 보면, X,Y 는 선택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겠지요? 그러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Z밖에 남지 않게 되겠군요. 그런 내용을 담아서 앞으로는 Z방향으로 진행하겠다는 내용으로 발표자료를 만들어 보세요. 내일 미팅 때 발표할 수 있도록..” 이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마다 반응이 제각각입니다.
우선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업력이 짧은 신입사원들은, 멍..해지면서 멘붕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1~2년쯤 된 사원급은 일단 알겠다고는 하는데 자료를 만드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더라구요.
입사한 지 3~4년쯤 되고 같이 일을 해 본 대리급들은 자기 나름대로 발표자료를 만들어 오는데 약간 포커스가 어긋나거나 너무 장황하거나, 또는 자기 나름대로 고민해서 메시지를 만들어 오는데 조금 매끄럽지 않은 경우도 있고요.
대리 후반이나 과장 초반쯤 되면 A,B,C 만 이야기 해줘도 척척 잘 만듭니다. 조금 더 연차가 쌓이면 스스로 메시지를 도출하고 자료도 잘 만들지요.
저와 함께 일하는 대리급 여자 엔지니어 한 분이 있는데, (한국에 유학 와서 대기업에 입사까지 하게 된 외국인입니다.) 정말 능력이 좋아서, 같이 10분 정도 디스커션 하고 메시지를 같이 도출해 내면 그 메시지를 가지고 30분도 안 돼서 발표자료 초안을 바로 만드는 신기한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렇게 자료를 만들어서 발표를 하면, 메시지가 너무 명료하고 논리적이어서 아무 이견이 없이 바로 채택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엔지니어의 도움을 받아서 모듈장 역할을 수행한 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은, 많은 주니어 사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PPT 발표자료를 만드는 데 있어서 나름대로의 팁을 제안해 보려고 합니다.
발표자료 효율적으로 빠르게 만드는 방법
첫째,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자료를 찾는다.
먼저 발표자료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발표자료를 통해서, 상황을 보고하고자 하는가? 또는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자 하는가? 아니면 협업 부서에 업무 요청을 하고자 하는가? 등등요.
협업 부서에 업무 요청을 하고자 한다면, 누가 무엇을 해 주세요. 라는 이야기가 정확히 담겨야 하고, 상황을 보고하고자 한다면 그 상황을 정확하고 간결하게 담아야겠지요.
중요한 것은, PPT 는 하고싶은 이야기를 도와주는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PPT 가 주가 되면, 온갖 자료들을 다 담아서 충실해 보이게 꾸미는 데만 집중하고, 정작 그걸 가지고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는 메시지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하나의 자료에서는 한 가지 주제의 이야기만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열 개가 있다고 하더라도, 단 한 가지 이야기만 해야 합니다. 청중들은 발표자만큼 그 주제에 대해 깊은 이해도 없고, 깊은 관심도 없고, 깊은 인내심도 없습니다. 발표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다 이해해 줄 수 있는 마음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청중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심플하게 하나의 메시지만 이야기 해야 합니다.
A자료를 보시면 a,b,c 라고 되어 있는데 이게 의미하는 바는 x,y,z 이고... 그런데 여기서 잘 보셔야 할 것은 x,y,z 사이의 관계인데... 라고 이야기 하다 보면, 그것이 발표자에게는 중요한 내용이라 할지라도, 청중의 관심사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청중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한줄요약 : 어느어느 부서에서 어떤어떤 업무를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라고 돌직구 날리고, 그 다음에 왜 해야 하는지를 최소한으로 설명하고, 나머지 자료들은 다 뒤로 빼서 질의응답 시간에 보충설명 하면 됩니다. 복잡하고 빽빽한 자료보다는 차라리 휑한 자료가 낫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셋째, 논리의 흐름을 단순하게 구성하기
심플하게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논리의 흐름이 좀 단순해야 합니다. A 이고, 따라서 B 이므로, C 이다. 라든지, A,B,C,D 가 모두 Z라는 결론을 지지하므로 Z 로 가야 한다. 라고 가든지, 논리의 흐름이 직선적이거나, 계층적이라면 두 층 이상을 거치지 않도록 구성하는 게 필요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학생 시절부터 발표자료 만들 때 지키려고 노력하는 룰이 있는데, 그것은 PPT 를 앞뒤로 왔다갔다 하지 않도록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한 페이지로 끝내든지, 또는 두 세 페이지를 “앞으로 직진”만 하도록 구성하든지, 그렇게 해야 이야기의 흐름이 직선적으로 가는 것이고 논리의 흐름이 단순해져서 사람들이 인식하기가 쉬워집니다.
발표할 때 “다시 앞 슬라이드로 가 보시면...” 이라고 말해야 할 상황을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넷째, 반드시 써머리 페이지를 만들고 한줄 요약문을 제시한다.
이건 회사마다 정책이 다를 수가 있는데, 반드시 요약문을 제시하는 것이 이해하기에 좋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어쩌다가 나홀로 소송을 준비할 뻔한 일이 있었는데, 민사소송 소장을 적으려다보니 막막해서 샘플을 찾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청구취지” 라는 항목에 “피고는 원고에게 ~~~ 를 지급하라. 라는 판결을 구합니다.” 라고 써 있더라구요. 그 말인즉슨, 판결문의 주문이 판사 머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재판이라는 게 원고의 소송을 바탕으로, 원고가 원하는 판결문을 써 주느냐 안 써 주느냐를 결정하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즉, “그래서 원하는게 뭐에요?” 에 대해서 정확히 대답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발표자료도 이와 같이 “원하는게 이겁니다.” 라고 한줄요약을 정확히 적을 수 있도록 해 주는게 청중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회의록 적을 때도 그 한줄요약을 활용할 수도 있고, 청중들이 이해를 다 못 했어도 “잘은 모르겠지만 , 어쨌든 이거이거 해달라는 거죠?” 라고 말하면 일은 돌아가게 마련이니까요.
다섯째, 템플릿이 있다면 템플릿을 충실하게 따르기.
규격을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것은 발표자료를 만드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인지 부하를 줄여 주는 역할을 합니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템플릿을 채우기만 하면 구도와 디자인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 없이 메시지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은 것이지요.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통일된 규격이 없으면 사람마다 발표자료의 모양과 구성이 다 다를 테니, “어디를 주목해서 보아야 하는지” 를 헷갈려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템플릿이 있다면, 템플릿을 잘 준수하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항상 같은 위치를 보면 결론이 나오니까 그곳을 보고 내용을 파악하기 쉽겠지요.
회사에서 권장하는 템플릿이 없다면, 자기만의 템플릿을 만들어 두는 것도 좋습니다. 자기가 주로 만드는 자료의 내용이 설득인지, 설명인지 등등을 잘 파악해서, 미리 양식을 만들어 두면 늘 새로 꾸미는 불편함을 덜 수 있겠지요.
자료를 꾸미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시각적으로 편안한 구도를 가지고 정렬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독성이 좋은 페이지에 대해서 많이 연구하고 살펴보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여섯째, 항상 0번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
시험에서 0번문제가 뭐죠? 네. 반, 번호, 이름 쓰기죠. 발표자료 만들 때도, 첫 번째 페이지에 제목과 날짜를 반드시 체크해야 합니다. 내용은 참 좋은데 제목 페이지를 수정하지 않아서 발표 시작부터 멘붕 겪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보통 PPT 를 완전히 Ctrl+N 눌러서 새 파일 열어서 작성하지 않잖아요? 이전에 발표했던 자료를 복사해서 내용을 새롭게 만드는 방식으로 많이 하실 텐데, 내용에만 집중하다 보면 표지를 제대로 못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발표 자료 열자마자 다른 제목이 나오면, “네, 이거 제가 제목은 잘못 적었는데, 나중에 다시 수정해 놓겠습니다. “ 라고 말하면 처음부터 전문성 떨어져 보이기 십상이지요.
마치며
오늘은 발표자료 만들 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내용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지식노동자에게 발표자료는 곧 상품이나 마찬가지지요. 생산성 있게 좋은 퀄리티의 상품을 만들어야 기업이 성공할 수 있듯, 지식노동자들도 각자 개개인이 1인 기업이라는 생각을 가질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가급적 좋은 상품을 적은 노력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자기만의 방법을 개발한다면, 그만큼 성과도 높아지고 인정받을 가능성도 높아지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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